8월 15일은 광복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교계는 지난 해 70주년을 맞아 거창한 행사를 치렀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올해는 비교적 차분하게 광복절을 보내고 있다. 한교연은 지난 7일 주일 주님앞에제일교회에서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개최하고, 8월15일을 시작으로 한달간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달로 지키기로 했다. 지난해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개최했던 한국교회평화통일기도회도 올해는 규모를 축소해 11일 숭실대에서 평화통일 비전기도회와 포럼을 개최했다.

8월 15일은 우리 민족이 일제에 빼앗겼던 주권을 되찾고 국권을 회복한 날이다. 한국교회는 일제 36년간 캄캄한 어둠 속에 방황하던 우리 민족에 일말의 희망이요 생명줄이었다. 기독교인의 수는 지금에 비해 턱없이 적었지만 그 당시 기독교가 사회에 끼친 영향력을 실로 지대했다. 그야말로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존재가 바로 한국교회였다.

오늘 날 한국교회가 이토록 급격한 수적 팽창을 이룰 수 있었던 근본 바탕에는 이 땅의 특정계층이 아닌 민중 속에 거부감없이 녹아든 기독교적 정서가 큰 몫을 감당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독교는 구한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던 시기에 구국 독립운동에 기치를 높이 듦으로써 민중에 희망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기독교는 5백년 조선의 낡은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교육과 의료봉사에 앞장서며 겨레의 영적 정신적 스승으로서 사명을 감당했다. 비록 그 당시 일제에 굴복하고 체제에 순복한 교회지도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주기철 목사 등이 보여준 일사각오 순교정신은 민족 교회로서 불굴의 저항정신을 대중의 가슴에 강하게 심어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어느 누구도 한국교회가 역사와 민족의 한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 3백명 중에 기독인이 120명이나 되는데도 국회 안에서 굿판이 벌어지는 나라, 그 나라의 역사교과서에 기독교에 대한 서술이 단 몇 줄에 그칠 정도라면 이미 기독교는 대중의 마음에서 떠나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원인 단지 일부 목사들의 도덕적 해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 종교든 일부 성직자들의 탈선만으로 전체가 매도당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이 땅의 기독교는 유독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성장을 논할 때마다 동시에 대형교회가 떠오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의 교회를 가진 나라이다 보니 유독 대형교회들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이들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이 한국교회 전체를 보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대형교회들이 예전에 작은 교회들조차 당연히 누렸던 사회적 존경의 지위에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몇몇 대형교회들과 유명 목사들의 일거수 일투족 때문에 한국교회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형편이다. 불신자들의 눈에 교회는 촌동네에 들어선 부자들의 고급사교클럽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어느날 갑자기 내 주거지에 들어와 높은 담을 쌓고 자기들만의 천국에서 호의호식하는 눈꼴 시린 존재일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부가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할 때도 기독교단체들 외에는 아무도 나서거나 편들어 주려는 사람이 없다. 서울 한복판에서 동성애자들이 해괴한 축제를 벌여도, 지역에 이슬람 할랄단지가 들어서도 기독교인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기독교의 입장을 두둔하거나 존중해 주지 않는다. 주님은 권력자가 아닌 사회적 약자들의 친구로 사셨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권력을 추종하며 스스로 사회적 외톨이로 버려지고 있다.

그래서 기껏 생각해 낸 자구책이 연합기관의 통합 작업이다. 기독교가 이토록 힘을 잃은 이유는 5년 전 연합기관이 분열했기 때문이며, 한기총과 한교연이 다시 합치면 못할 게 없다며 주요교단 총회장들까지 나서 이단이든 뭐든 따지지 말고 무조건 선통합하라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해마다 8.15에 그나마 고개를 들 수 있었던 것은 거대한 조직으로 똘똘 뭉쳐 정부도 무시하지 못할 위상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라 고난의 시기에 촛불처럼 자기를 태워 나라와 민족을 구원한 순교 역사를 지닌 민족교회로서 그 당당한 자긍심 하나라는 것을 한국교회가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