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창 훈 목사

인생길에 다가오는 문제는 다양하지만 수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까다로운 문제가 영적인 문제이다. 오늘 귀신들린 어린 딸을 데리고 주님께 와서 깨끗하게 고침 받는 사건을 통해서 풀 수 없는 문제가 풀어지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축원한다.

첫째, 풀 수 없는 문제가 풀어지려면 듣는 귀가 바르게 열려야 한다. 본문 말씀 25절에 보면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랬다. 예수님이 전도하시고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치시면서 이 동네 저 동네를 다니시던 중 주로 지방에 가서 조용히 어느 집에 들어갔다.

이유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쉴 틈이 없어서 잠시 쉬려고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언제 어떻게 들었는지는 몰라도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어머니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살면서 문제를 만나지만 그때 듣는 귀가 어디로 열리느냐가 문제를 풀 수도 있고 더 심하게 만들기도 한다.

만약에 문제를 끌어안고 힘들어 하다가 점쟁이나 무당이나 철학관이나 사악한 귀신이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문제가 풀리는 것이 아니라 얽히고 설 켜서 풀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풀 수 없는 문제가 왔을 때 먼저 예수님 소문 듣고 교회 소문 듣고 주님께 나오면 문제가 풀리는 길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귀가 열려야 한다. 풀리지 않는 곳에는 항상 세상 방법이 앞서거나 사람의 말을 따르거나 육에 속한 말을 먼저 따르는 특징이 있다. 시대의 변천에 상관없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면 풀 수 없는 문제가 풀어지기 시작한다.
둘째, 풀 수 없는 문제가 풀어지려면 영적으로 주님께 완전히 항복해야 한다. 본문 말씀 25절 하반절에 보면 ‘곧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리니’ 그랬다. 지금까지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를 써도 딸의 문제가 풀리지 않았기에 이 여인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그냥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손과 머리와 가슴과 배를 땅에 대고 완전히 엎드렸다.

이 엄마의 모습에는 큰 의미가 숨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시여 내 힘으로 지금까지 고치고자 했으나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사람의 노력도 포기하고 세상 방법도 다 포기합니다. 오직 예수님만 의지합니다’는 마음의 고백인 동시에 예수님께 ‘제가 완전히 항복합니다’하는 영적인 자세이다.

좀처럼 풀 수 없는 문제를 풀려면 전능하신 주님 앞에 항복해야 한다. 내 생각도 내려놓고, 완전히 항복하고, 주님만 문제의 해결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가 병들었을 때 왜 옆에 의원이 없고 약이 없고 돌볼 자가 없었겠는가. 그러나 세상 방법으로 아무리 해도 안 되었으나 하나님께 항복하고 엎드려 하나님만 바라보았을 때 죽음의 문제가 풀리게 되었다. 내가 두 손 들고 항복하면 그때 주님이 일하신다.

셋째, 풀 수 없는 문제가 풀어지려면 끝까지 강청해야 한다. 본문 말씀 26절 중반절부터 보면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그랬다. 이렇게 엎드려 애원하는 어미에게 주님은 심히도 아픈 말을 던진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고 했다. 여개서 개들이라는 표현은 수로 보니게 여인처럼 이방 사람들을 무시하고 경멸할 때 쓰는 말이다.

주님이 이 여인을 개라고 표현하면서 시험을 했으나 그 시험을 당당하게 통과하고 간구했을 때 주님이 ‘돌아가라 네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느니라’고 하셨다. 집에 갔더니 기적같이 딸이 온전한 정신으로 고침을 받았다. 우리 삶 속에 풀기 힘든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귀를 바르게 열고 주님께 항복하고 끝까지 강청하면 반드시 해결 될 줄 믿는다.

동아교회 담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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