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냇가 건너편 집에 일본 사람들이 사는가보았다. 여자들이 양동이를 들고 시냇가로 나와 몸을 숙이고 물을 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사람 사는 걸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양동이를 든 여자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우석은 바라보고 있었다. 늘 그런 생각이 들지, 이렇게 사람 사는 건 다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서로 등을 지고 편을 가르고, 누구는 엎드려서 기어야 하고 누구는 채찍을 들고 서 있어야 하는지.

. 시냇물 건너편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왓다 그가 비탈을 몇 걸음 내려가 아이들을 보고 있을 때였다. 모여 섰던 아이들이 우석을 건너다보며 갑자기 무언가를 던지기 시작했다. 돌이었다. 돌 하나가 날아와 툭 하고 우석의 발 바로 앞에 떨어지고, 몇 개의 돌이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우석의 어깨 너머로 날아갔다. 아이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없어져, 조선놈아. 없어져버려.” “더러운 조센진, 조센진, 조센진.”

우석은 빠르게 뒤돌아 언덕을 올라갔다. 아이들의 돌팔매질과 함께 조선놈을 부르는 소리가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 깔깔거리며 돌아가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우석은 망연히 서있었다. 아이들이 사라져간 일본인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넌 뭐야?”

새로 온 사람들을 인솔해 터널 공사장으로 데리고 가는 일본인 이었다. 각반을 찬 그가 가죽채찍을 든 채 걸어 내려왔다. “함부로 다니지 말라고 했다. 여기가 놀러 온 덴 줄 아나?”

구레나룻이 거뭇거뭇한 그가 채찍을 내흔들며 눈을 부라렸다.

우석은 고개를 숙이고 그의 발밑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처음이라 잘 몰랐습니다.”

“조선놈과 북어는 두들겨야 한다더니, 그런 것도 하나하나 말을 해야 하나! 바보새끼”

과부네 집에서는 머슴이 왕방울이라더니, 너 참 잘났다. 허리를 굽실거리며 우석은 그의 옆을 지나 숙사로 향하는 비탈길을 걸었다. 이건 마치 땅 끝에 서 있는 느낌이로군,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마지막 동네. 하시마도 여기도 다 땅 끝이다. 땅 끝. 그날, 터널 공사장 안은 싸늘하게 기온이 내려가 있었다. 땅 속이라 들어서자마자 오히려 섬뜩하게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일이 시작되면서 그 싸늘함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몸에서는 땀이 흘렀다. 탄광과는 또 다른 공포가 거기에 있었다.(출처 : 한수산 장편소설. 군함도)

땅 끝의 고통을 잊었을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우리는 광복절 71주년을 맞이하고 있지만 날이 갈수록 대한민국은 갈등과 상처만이 깊어가고 있다. 도대체 그 누가 이리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애국은 힘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시작 되는 것. 힘 있고 애국 한다는 자들이 일제(日帝)에 나라를 팔아넘기고 한 치의 부끄러움도 못 느끼며, 자신들만이 호의호식하며 힘을 유지해 올 때, 힘없고 가슴으로부터 애국 애족을 해 온 사람들은 항상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다. 해방! 그러나 그 해방은 소수의 힘없는 백성들에게 어떻게 다가 왔을까 ~? 지금의 우리 대한민국은 ‘조선놈’이라며 학대받으며 죽어갔고, 온갖 치욕과 고통 속에 노예로 살 수 밖에 없었으며, 지금도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애통해 하시는 모든 분들까지도 깡그리 잊자 라고만 하는 이들이 있다면, 또다시 우리를 땅 끝으로 내어 몰아 “한국놈~!” 소리를 듣게 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라도 깨어나야 할 터인데!

무릇 악인더러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잠 24:24-25)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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