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인조가 농성 59일만에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항복함으로서 병자호란은 끝이 났다. 정축년 1월 30일에 삼전도에서 항복의 예를 행한 인조는 절대 항복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성에서 나온다는 뜻인 하성(下城)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두 손을 묶은 다음 죽은 사람처럼 구슬을 입에 물고 빈 관과 함께 항복'하는 반합(飯哈)이라는 항복의식을 요구하는 청군에게, 겨우 세 번 절 할 때마다 세 번씩 머리를 땅에 찧도록 하는 굴욕적인 의식인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항복했다.

이것이 조선 왕조의 치욕 중에 치욕으로 불리는 삼전도의 굴욕이다. 한많은 역사에서 굴욕적 사건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 치욕의 원인은 코 앞에서 청군의 기마부대가 휘젓고 다니는 데에도 조정은 주전파와 주화파로 갈라져 싸웠기 때문이며, 납서(蠟書)를 통해 소집된 근왕군을 지휘해야 할 도원수 김자점이 양평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각 도에서 올라오던 근왕군은 청군의 발빠른 별동대에 의해 각개격파 당하였기 때문이다. 이 치욕은 명을 섬기며 당시 소중화(小中華)를 자부하던 당시 사대부들을 충격과 혼란으로 몰아넣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사드 정국’으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에서 건국이래 최대의 위기가 될 수도 있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물론 정황은 많이 다르지만, 자칫하면 제2의 정축하성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전광석화같은 속도와 전투력을 자랑하던 청군의 기마부대 대신에 우리 경제의 운명을 한손에 움켜쥐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에 끼어 있다. 여기에 핵과 미사일을 손에 들고 흥정하는 평양과 이를 기화로 군사 대국으로 재기하려는 일본의 야망 앞에 직면해 있다. 반면 우리가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론통일과 정부와 백성의 혼연일체, 그리고 장렬한 전투의지 뿐이다. 당시 인조는 이 일에 실패했고 사대부는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까닭에 백성과 군사들은 허무하게 죽어갔고, 왕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을, 충신과 왕족들은 인질이 되었고, 나라는 청일해전 때까지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임진왜란의 그 쓰라진 경험 이후에도 조선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왜 그 역사를 반복하려 하고 있는가? 조선 사대부가 자랑스러워했던 소중화(小中華)를 지금 우리나라의 세계 10대 교역국의 자부심으로 연계해보더라도 그것 자체가 국난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삼전도의 굴욕이 내상을 더 크게 입힌 것은 소중화의 자부심이 무너진 까닭이었다. 아무리 세계1위 항목 리스트가 많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주렁주렁 달고 와도 국난을 극복하지 못하면 스스로 더 큰 내상을 입게 된다는 말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삼전도의 굴욕을 명심하여야 한다. 청군 기병이 남한산성을 직접 위협하는 현실에서 주전파와 주화파는 의미없다. 상대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거국적 항전 의지가 결집되어 있어야 주전을 하든 주화를 하든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당리와 당략, 그리고 개인적인 정치적 입지를 위해 사분오열, 지리멸렬의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참으로 가관이다.

아무리 항복이 아닌 하성이라고 우겨도 결론은 굴욕이다. 미중일의 갈등구도 앞에 필요한 것은 함부로 얕볼 수 없는 강력한 내적 결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국회의 엇박자와 친중, 친북, 친미 세력 간의 국내 갈등은 필자를 불안하게 한다. 특히 지금 사드문제로 방중하고 있는 의원들이 이 부분을 꼭 명심하여야 할 대목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지만 역사앞에 정직해야 한다. 그 정직은 결코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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