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호 감독

오래간만에 몇몇 원로목사들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이란 영화를 최근에 감상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주역인 한국 해군 첩보부대와 그들을 도운 켈로부대(한국인 스파이 부대)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고 북한공산당의 침략으로 남한은 거의 인민군들에게 점령당하여 이제는 낙동강만 건너면 부산만 남은 대한민국이 김일성의 손아귀에 완전히 점령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당시에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극동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움직여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승리케 함으로 3개월 만인 9월 28일에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다시 중앙청에 태극기를 꽂게 된 것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을 가리켜서 이 민족의 구세주라고까지 격찬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950년 6월 29일에 북한군이 서울을 탈환할 즈음에 잠시 한국에 온 맥아더 장군이 영등포 모 진지에서 당시 19세 된 소년병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는 초반부 맥아더 장군과 이 소년병의 대화를 재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맥아더 장군이 이 소년병에게 “다른 부대는 다 후퇴했는데, 자네는 언제까지 여기를 지키고 있을 건가”라고 묻자 이 소년병은 맥아더 장군에게 경례를 올리면서 “상관의 명령 없이는 절대로 후퇴하지 않겠고 이 곳을 지키다가 죽으면 여기서 죽겠다”고 말하는 것을 당시 통역 장교인 김종갑 대령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러자 맥아더는 “이 소년이 씩씩하고 훌륭한 군인”이라고 칭찬한 후 “내가 일본으로 돌아가면 즉시로 지원군을 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는 것이다.(이 사건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인 정일권 회고록에 있음)

인천상륙작전의 시작은 어쩌면 이 소년병을 통해 맥아더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소년병의 이름은 신동수씨로 그는 상관의 명령대로 3일 후에 후퇴 중 총탄에 맞아 왼쪽 다리를 절단까지 한 상이군인이 되어 제대 후 서울 중계동에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그의 부인은 현재 살아있는데 82세 된 두월순씨도 지난 8월 1일에 인천상륙작전 영화를 감상하였다고 한다.

오천 명의 군중 속에 있었던 한 소년의 아름다운 헌신으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처럼 66년 전 이 나라가 공산화될 뻔한 위기에서 맥아더 장군을 통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짐으로 이 땅에 자유와 민주의 나라인 대한민국이 건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 소년병의 철저한 애국행동이 맥아더의 마음을 감동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약한 자와 없는 자들을 들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면서 역사하고 계심을 나는 착실히 믿고 싶은 것이다.

기감 전 감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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