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웃음, 달빛이 따뜻한
나는 지금 무뇌의 터널에 갇혀 있다
비방록이 지워진 무뇌아다.

사람들은 자와 저울과 두승(斗升)의 노예,
이 세상을 짓고 쌓고 허물 것도,
오감의 이미지도 바랜 무뇌아다.

세상은 화해가 없는 투쟁의 꽃이어도
나는 즐겁고 외롭지 않은
기대와 상실이 죽고 노도의 꽃이 피는 무뇌,
모래 위에 시간의 집을 짓는 목수다.

지구가 병들고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래도 삶과 죽음의 싹이 트는 푸른 무뇌,
세상은 다시금 능금을 먹어야 하나?

* 전병윤 시인
1996년 <문예사조>신인상,
수상: 열린시문학상. 국제해운문학상. 진안문학상, 전주시예술상. 전북문학상
진안문협 초대회장. 전북문인협회 이사
시집; 『그리운 섬』 . 『산바람 불다』. 『꽃지문』. 『무뇌 』 등

▲ 정 재 영 장로
시는 변용(變容)이 생명이다. 변용이란 ‘얼굴 바꾸기“라는 말로, 시에서 비유를 통해 정서나 관념의 비가시적인 언어를 감각할 수 있는 이미지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예시에서는 1~2연에서 무뇌아로, 3연에서는 무뇌의 목수로 변용(비유)한다.

뇌가 없다는 말은 생각이 없다는 뜻이 아닌 판단을 유보한다는 의미다. 시대적 위기 상황을 알면서도 어찌할 도리 없음을 말함이다.

과연 시인의 의도는 그런 것일까. 시는 역설이나 아이러니와 같은 모순을 통해 진실을 보여주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부정을 통한 긍정이다.

화자는 무뇌아라 표현하지만 실상 정확한 한단과 인식의 소유자임을 보여준다. 그것도 질문형식을 빌어 독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처럼 말하지만, 강조법을 사용하여 상대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자, 저울, 두승(말과 되)은 척도를 재는 도구다. 자는 길이요. 저울은 무게요, 두승은 부피를 재는 도구다. 곧 모든 사물을 헤아리는 기준을 말한다.

현실 삶에서 판단의 기준을 잃어버렸다 함은, 단지 습관과 규칙에 얽매여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존재의 모습을 보고, 불안한 미래를 암시한다. 그러나 그런 종말적인 역사 속에서도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역사가 계속되는 한, 새로운 희망의 기대도 가진다.

이런 절망과 희망이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이질적 요소에서 융합시의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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