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희 원 목사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남미 대륙에서 열려 모두를 웃고 울게 만들었던 전 세계인의 축제 ‘리우 올림픽’이 17일 간의 열띤 결전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7개국 1만500여명의 선수들은 28개 종목 306개 금메달을 놓고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우리나라 선수들도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로 당초 예상보다는 저조했지만, 그래도 전체 8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마쳤다.

모두가 챔피언이었고, 모두가 금메달감이었다. 그런데 금메달보다도 더욱 값진 것이 바로 스포츠맨십이었다. 사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들이 흘린 땀방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4년 이상을 금메달을 따고 단상에 올라가는 상상을 하면서 버티고 버텨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1등이 되기 위해 상대방을 꺾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때로는 반칙도, 때로는 치사한 방법도 동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 육상 5000m 예선에서 나온 장면은 무한 경쟁이 아닌, 금메달보다 값진 뜨거운 선수애였다. 올림픽이 왜 열리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뉴질랜드 대표 니키 햄블린과 미국 대표 애비 다고스티노였다. 이들은 여자 육상 5000m 예선 결승선을 2000m 정도 남겨 놓은 상황에서 서로 다리가 엉켜 넘어지고 말았다. 촉각을 다투는 중요한 육상경기에서 넘어졌으니 이미 1등은 물 건너 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망연자실하며 웬만하면 포기를 하는 것이 수순이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서로를 위로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다고스티노는 햄블린을 향해 일어나서 끝까지 뛰자고 독려했고, 햄블린도 힘을 얻어 일어섰다. 그런데 이번에는 햄블린을 위로하고 함께 뛸 것을 독려했던 다고스티노가 주저앉았다. 충돌 시 발생한 충격으로 무릎에 부상이 생겨 뛸 수 없었다. 이번에는 햄블린이 다고스티노를 부축하며 조금만 더 뛰어보자고 외쳤고, 둘은 비록 꼴찌였지만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모두가 전력질주로 1등만을 바라보며 달릴 때, 쓰러져 있는 동료와 함께 끝까지 완주한 모습은 ‘사랑’ 그 자체이다. 만약 그 선수 중 한명이라도 1등만을 바라보고 쓰러진 동료를 지켜주지 못했다면, 끝까지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4년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과 1등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서로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아낌없는 주는 사랑이다. 이들은 1등보다도 값진 것을 얻었다. 라이벌이 아닌, 서로 같은 곳을 바로보고 갈 수 있는 평생 친구를 얻은 셈이다.

작금의 세상은 1등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밟고 올라가서라도 최고 높은 곳에 자신이 서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1등이 아니다. 진정한 1등은 온갖 부당한 반칙을 해서라도 꼭대기에 오른 자가 아닌,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이다. 만일 부당함이 보인다면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챔피언이다.

기독교국제선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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