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8월 들어 엄마가 4살 딸을 굶기고 폭행하여 죽인 사건과 남편의 외도를 의심한 아내가 21개월 된 아들을 허리띠로 목 졸라 살해한 사건과 이모가 조카를 살해한 사건이 터졌다. 소 잃은 뒤에 외양간 고친다는 말은 버스 지나간 뒤에 손든다는 속담과 비슷한 뜻을 담고 있다. 아예 사건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었지만 이미 사건은 전 국민의 마음을 아리게 하고 말았다. 어찌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책은 없는가? 늘 사건이 터지고 나면 불쌍하다. 안됐다. 죽은 아이가 불쌍하다. 라는 말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습관이 되다시피 됐다.

왜 사회에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는 원인이 무얼까? 각개 각층의 전문가들은 수두룩한데도 늘 사건이 터지고 나면 뒷북치고 사건을 말 작란으로 난도질하지만 진작 대안은 내놓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 힘없는 어린 아이들이 그것도 부모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은 문명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속담에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 한다는 말도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제 새끼를 갖가지 혐오한 방법으로 더군다나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는 아이들을 죽이는 현실을 원망과 타령만 하고 있지 말고 방지 대책을 내어 놓아야 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민주국가이다. 지금 국가적으로는 출산율이 작아 국가의 백년대계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계속해서 어린아이들만 희생되어버리니 어떻게 표현 할 길이 없다.

자기 자식을 스스로 죽인 부모나 자기 방어능력이 부실한 어린 아기들을 살해하는 부모나 친지 지인 그리고 타인 누구를 막론하고 법으로 강력하게 다스려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들 중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국민의 세금으로 고액 세비를 타면서 무엇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대국 편을 들기 위해 사대주의 사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어처구니없는 국회의원들이라면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는 편이 낮다고 사료된다. 문제는 금배지를 달기만 하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행동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명예가 서지 않고 국회의원의 품위가 서지 않는 어린아이들의 생존 대책을 내어 놓으라고 하면 국회의원이 그렇게 한가한줄 아느냐 하면서 호통이나 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사회가 해가 뜨면 일간지신문을 장식한 사건 사고로 도배를 하는데도 뉴스거리로 잃고만 있는 사회 지도층들과 교육기관 그리고 종편에 대담을 벌리고 있는 논객들의 말작난만 늘어놓는 풍경 이제 그만 하고 실제 대안을 내어 놓거나 자구책을 마련하기를 당부한다.

사회악의 정도가 이제는 혀를 내두르는 정도가 아니라 자기 자식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애석해 하지도 않는 부모의 냉기서린 얼굴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한 여름에 오싹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이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인면수심이 이런 것인가 하는 실제를 보면서 섬뜩하다 못해 악의 화신이 이런 모습인가 하는 생각에 몸서리 처진다.

문제는 대한민국에 종교들이 대성공하였고 그 중에 기독교의 세력은 전 국민 중 사분지일에 해당한다. 그런데 종교가 필요한 것은 결국사회악을 일소하는데 있다고 보는데 이제는 종교의 효력이 다하였는지 곳곳에 산재한 교회건물 곁 이웃에서 이러한 참담한 일들이 일어나도 교회는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종교가 바로 서면 사회의 악도 수그러든다고 보는데 지금 한국 사회의 악한 일의 발생은 종교가 제 역할 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물로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중에 기독교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는 평신도들의 문제 보다 먼저 지도자들의 문제다. 설교 강단에서 말 작란에 그치지 말고 실제 교회 주변 관심을 갖고 교회가 돈이 안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예산이 부족하면 교회 건물을 팔아서라도 사회문제에 팔을 걷어 부처야 한다. 실제 사회문제 전담반을 교회 내에 설치하여 교회주변의 어려운 환경과 문제를 안고 있는 자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상담할 수 있도록 해 사전에 극악한 일을 열에 하나라도 방지 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이 옳은 일이다. 더 이상 교회는 자체 교회 비대에만 정신 팔지 말고 예수님이 가난과 병과 사회냉대와 힘없는 자들을 위한 것처럼 교회가 사회에 필요한 곳이 되도록 하자. 주간 중 예배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텅 비어 있는 교회는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천국의 문이 24시간 열려 있는 것처럼 교회의 문이 닫혀 있지 않도록 사회 어려움 해결에 도움이 되는 교회와 신앙인들이 되자.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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