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군함섬이라고 하는 거기, 그 탄광에 ‘장태복’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니?” - “유명한 사람이다!” 섬 안에 그 양반 이름 모르는 조선사람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이야 없지.” - “유명하다니? 그 사람 뭐가 유명한데?”

우석은 빠르게 이야기했다. 그 섬은 말이 탄광이지 감옥이라는 게 옳다. 죄수들을 데려다 노역을 했던 데라 그렇다고들 하는데, 아직도 그때의 포악함이 남아 있다. 우리야 징용이라지만, 제 발로 돈벌이를 온 광부들도 거칠게 다루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도망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많은 만큼, 잡혔다 하면 반은 죽여 놓는다. 거기서 조선사람 셋의 탈주사건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들은 특히 속아서 그 섬에 팔려왔기 때문에 알선자를 잡아 죽이겠다고 이를 갈았다는 거다. 결국 둘이 잡혀서 한명은 죽어서 시체로 돌아오고 한명은 잡혀왔다. 그 잡혀온 사람이, 고문을 하던 노무계 직원의 목을 젓가락으로 찌르는 사고를 냈다. 유명하다는 건 바로 그 얘기다. 천장에 매달린 알전구 불빛이 길남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한 되들이 커다란 술병을 움켜쥐고 고개를 숙인 길남의 얼굴을 우석은 찬찬히 바라보았다. 이 친구가 지금 울고 있잖아. 우석이 몸을 바로 하고 앉았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술잔을 들어 바닥에 남은 술을 홀짝 마셨다. 우석이 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 양반은 나이도 있고, 징용 나온 사람이 아니었다고 들었어.”

“나도 알아, 인마!” 길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목소리는 낮았지만 우석도 지지 않고 말했다. “이것만 얘기하자. 우리 거기서 섬 바닥을 발칵 뒤집어놓으며 싸웠다. 사무실 점령해서 다 때려 부수고, 회사 뒤집어엎는다고 다들 몽둥이에 곡괭이 들고 나섰다. 우리가 거기서 그렇게 힘들게 회사와 싸울 수 있었던 힘이 뭔지 아니. 그 양반 같은 사람이 있어서였어. 그냥 주저앉지 않고 싸운 사람도 있다는 거였어.”

길남이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르게 킬킬거렸다. “달걀 들고 바위 치는 병신 짓. 잘난 척 그만해. 회사란 게 그렇게 만만한 줄 아니. 바위 칠 달걀이 있으면 처먹기라도 하라지.”

아니꼬운 소리 좀 그만하라는 듯 비웃고 난 길남이 다시 얼굴을 굳혔다.

“그래서, 결국 그 사람 어떻게 됐냐?” “포승줄에 묶여서 섬을 나갔다니까, 그다음이야 모르지.” - 저만큼 혼자 떨어져 앉아서 우석은 어제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술이나 한잔하자. 그런 말을 하며 길남이 찾아왔을 때 우석은 말했었다. 또? 이번엔 어머니라도 찾을 일 있냐? 말해 놓고 나니 아차 싶었다. 길남은 아직 아버지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 서둘러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우석에게, 네 입에서 그런 소리 나올 줄 알았다면서 길남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이었다.(출처 : 한수산 장편소설. 군함도)

우리 민족은 일본의 강점기동안 노예생활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금에도 우리의 허리는 큰 통증으로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서 일까? 위선의 탈을 쓴 자들이 활보하기에, ‘금(金)수저’. ‘흙(土)수저’. 이제는 ‘무(無)수저’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으니 참으로 아프다. 그래도 정직히 살아보려 몸부림치는 자들이 어리석어 보이는 세상. 돈 앞에 아양, 힘 앞에 비굴, 권력 앞에 아부하는 등, 굴종하는 모습들에서 비통(悲痛)함마저 갖게 된다. 문제는 우리 개신교 역시 별 다를 바 없음에 ‘군함섬’에서의 의분을 발산 했던 ‘유명한 분’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그러나 죽을 만큼 아파하는 그 아들과 같은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는 이는 누구일까 두리번거려 본다.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6)

한국장로교신학 학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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