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소망은 부활의 소망이요, 하늘의 기업에 대한 소망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다스리며 영광을 누릴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은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무익한 것이요 부활의 소망이 없다는 것은 그 삶이 헛된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시편의 많은 기자들도 인생에서 남는 것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솔로몬도 전도서에서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소망이 없는 자들이 하는 것 모두가 헛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열심히 돕고 남을 위해 살아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다면 자선 사업가로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우리들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의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삶을 살고자 하는 참다운 이유를 부여해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삶의 이유를 물어보면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오지만 그러한 것들은 부활의 소망이 없다면 헛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너희의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다.” 고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삶이 영원까지 이어지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부활의 소망은 우리들에게 고난을 가져다줍니다.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고난을 당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상황은 로마의 핍박이 매우 심하였기 때문에 믿음을 따라 살아가기가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기도 하였으며 톱으로 켬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소망의 이유를 묻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좋은 의미에서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묻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핍박하고 죽이기 위에서 믿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망이 고난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소망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참다운 삶의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부활과 부활 이후의 삶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우리들에게 주어질 때에 죽음 이후의 삶이 연결될 때에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한다 해도 의미가 있고 우리가 열심히 하는 장사에도 의미가 있으며 공부에도 그밖에 우리의 삶의 모든 것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살아간 모든 신앙인들은 나름대로의 어려움을 겪고 살아갔습니다. 신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쉬운 삶을 살기가 힘듭니다. 이전 시대의 하나님께 쓰임 받은 모든 신앙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불의와 거짓에 타협하지 않고 이로 인하여 오는 불이익과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수많은 유혹과 회유와 타협이 있었겠지만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았기에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삶의 방향을 세상으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고 고난을 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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