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청와대 우병우 수석 사태를 보면서 생각난 것이 있다. 권력의 정당성은 객관성에 있고, 객관성은 준법과 상식에서 확보된다는 것, 왜 위정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할까? 집권자가 되기 전에는 그토록 잘 알고 누누이 강조하던 이들이 정작 집권을 하게 되면 이를 잊어버리니 참으로 모를 일이다.

누명과 모함과 조작이 사람을 얼마나 처절하게 파멸시키는 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도덕적 기강과 정직성을 확보하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누명과 모함과 조작의 결과가 제대로 밝혀지는 순간, 그런 일을 자행한 자들에 대한 준엄하고도 혹독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직자, 그것도 고위직에 머무는 이에게 제기된 의혹은 그 자체로 심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소문이 아니고 수사권을 가진 기관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이라면 당사자가 해야 할 처신은 백인에게 백번 물어도 대답은 같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 우병우 수석의 태도는 절대로 공직자답지 못하다. 내부적으로 무슨 사연이 있고, 구조적 권력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지는 몰라도 청와대와 우 수석은 이미 권력의 객관성을 상실했고 그러므로 그런 상태에서 그 어떠한 처신과 언행도 정의로울 수 없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은 이미 그 힘을 상실한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지속되는 권력은 구조적 폭력이 된다. 지금 청와대와 우수석은 국민을 향해 구조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무릇 고위 공직자는 민중의 사표가 되어야 하고 교육 세대들에게 표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정치적 인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보여준 투혼은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 골프를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결승 4라운드가 끝났던 새벽까지 중계를 보면서 응원했다고 한다. 이것이 사표요 교육적 표상이다. 아픈 손가락의 통증을 참아가며 무서운 승부사의 근성을 가지고 4라운드의 긴 장정을 견뎌낸 그녀에서 보내는 찬사는 말로서는 부족한 것이다.

박인비의 투혼에 비유될 정치와 권력의 사표와 교육적 표상은 객관성과 도덕성이다. 그것을 위해 공직자가 무서울 정도의 자기 관리와 더불어 뛰어난 성적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무능한 권력은 야만적이다. 부패한 권력은 폭력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하는 권력은 유능하면서도 도덕적인 권력이다. 사람들은 그런 인물을 어디서 찾느냐고 반문하지만 어떤 면에서 널리고 널린 것이 그런 인물인지 모른다. 다만 그들이 찾는 인재풀이 너무 좁고 얕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민족의 우수성은 집단과 개인에게 있어서 탁월하다. 일제의 식민사관에 사로잡힌 이들이야 우리 민족을 스스로 낮추어 깔보지만, 우리는 개인은 물론이고 민족과 국가단위로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세상에 그런 민족이 얼마나 되는가? 독창적인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정치적 왕조를 이어온 나라가 그리 많은가? 그런 민족을 스스로 낮추지 말고 그런 역사를 이어온 개인적 가치를 폄훼하지 말라. 우리는 우수한 민족이요 우수한 개인이다.

국가는 인재풀을 넓히고 발로 뛰며 사람을 찾아야 한다. 믿는 사람과 일하는 것을 말리지는 않지만, 그들이 스스로 권력의 객관성을 상실하였다면 버려야 하고, 구조적으로 상실하였다면 대대적인 개혁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것이든 그 권력을 유지시켜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권력의 미래가 있다. 자신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과연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이런 코미디를 슬프게 지켜봐야 국민들은 애석하게도 그 결과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이미 힘을 상실한 권력의 결정을 정의롭다고 할 바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