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더불어 약과 더불어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장롱에 비싸고 좋은 옷도 여러 벌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한 남자의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는 여자이지요. 자기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귀퉁이 가지지 못한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는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돈을 아끼느라 꽤나 먼 시장길도 걸어 다니고 싸구려 미장원에만 골라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잘 들어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 문 현 미 시인
시인들의 모임이나 행사에 가면 카메라를 들고 그날, 그 순간의 표정을 담는 시인이 있다. 온화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한 컷, 한 컷 정성스레 사진을 찍는 모습, 아무런 욕심이 없어 보이는 듯하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인을 일컬어 “가장 죄 없는 영혼을 지닌 존재”라고 했다. 이 시인에게 참 어울리는 말이다. 그의 이런 소박한 언행이 시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시는 매우 어렵다고들 하는데 나태주 시인의 시는 그렇지 않다. 그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어느 새 마음 한 켠에 은은한 잔물결이 일렁이는 걸 느낀다. 시의 중요 요소라고 하는 은유가 쓰이지 않아도 시이다. 행과 연 구분이 없어도 시이다.
일반 독자들은 비유라든가 이미지 또는 어떤 형식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복잡하고 스피드한 세상에서 울림이 있는 한 편의 시면 충분하다. 나시인은 언젠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적이 있다고 했다. 믿음이 견고하지 않던 때, 의사도 살리기 어렵다던 병에 걸려 오랜 시간 병상에 있었다. 그는 병상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눈부신 빛을 향해 걸어가며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면서 그게 천국으로 가는 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이 시를 지었다.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시이기 때문에 가슴의 풀섶에 와 닿는다. 무덥던 여름이 지나가고 높푸른 하늘의 이마가 눈앞에 성큼 다가선다. 맑고 푸른 하늘 같은 시가 그리운 계절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마태 5:3)이라는 말씀이 떠 오른다.

백석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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