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공동운명체로서의 선교전략 세워야
민족의 염원인 한민족의 통일 위해 해동하는 교회로 거듭나라

성서에 나타난 민족개념

신약과 구약의 일관된 개념은 민족이다. 그만큼 민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의 재상은 개인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민족이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부터 등장하는 민족은 유대민족사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이를 증명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이것은 예언자들의 에언 활동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성서의 ‘만민’, ‘모든 백성’ 등은 복수로서 이스라엘 아닌 모든 민족을 말한다. ‘이 백성’은 단수로서 이스라엘 민족을 말한다. 이는 백성을 민족으로 볼 뿐, 개인으로 보지 않는다.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과 구별된다. 이 민족은 신의 질서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그 중심에 선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가업을 주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신명기 32장8절)”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민이란 신념이 반영되었다. 다른 민족들이 민족으로 형성된 것 역시 하나님의 창조질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는 ‘국민’과는 다르다. 동양에서 말하는 ‘민족’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국가의 조건인 국토와 정치적 권력을 잃은 이후에 만들어진 사상이다. 분명한 것은 국가나, 국민과 구별된 민족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는데 주목된다.

민족은 공동의 운명체이다. 또한 축복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민족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할 때, 이 민족을 가차 없이 심판한다.

이스라엘의 불우한 운명과 선민사상의 후퇴는 또 민족의식을 후퇴시켰다. 에스겔 등은 연대의식을 거부하고 개개인을 신 앞에 내세웠다. 반면 이사야 등은 민족 안의 ‘적은 무리’를 선택했다. 이는 유대교시대에 와서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파악하던 정통은 거의 후퇴하고, 하나의 종교적 공동체로 파악했다. 다른 민족은 종교적 차원에서 이방인이라고 했고, 민족이란 개념은 점점 멸시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민족이란 말 대신에 군중이란 말로 바꾸어지게 하기까지 했다.

신약에서 민족이란 단어가 60회 정도 나온다. 신약성서에서의 민족은 특별한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반면 구약에서는 100정도 나오는데, 다른 민족과 구별해서 유대민족, 또는 그리스도공동체로 사용됐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유대민족을 전제로 해서 말한다. 초대교회에 이르러서 이스라엘민족의 담을 넘는다. 바울은 그 선구자라고 말 할 수 있다. 바울은 복음이 한 민족의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것이라며,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확산시켜 나간다. 그리고 유대민족도 이 복음에로 돌아올 때 역사의 끝이 오리라는 것이다.

신양성서에서 말하는 민족은 형연 또는 지연의 조건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공동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서의 ‘참이스라엘’은 다름 아닌 교회를 뜻한다.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단위를 존중한다. 또 민족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장이다. 반면 심판의 대상도 된다. 또 민족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실현하는 단위이다. 특히 민족은 정치체계화 된 국가의 국민과 엄격히 구별되고, 궁극적인 단위가 아니라, 온 민족이 하나님의 새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공동체가 되기까지의 과도적인 단위이다. 기독교에서는 민족은 있어도, 민족주의는 용납할 수 없다.

이스라엘 민족에는 3가지 사상이 민족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하나는 선민사상이고, 또 하나는 역사 속에서의 미래희망이며, 마지막은 메시아 사상이다.

▲ 한국교회는 성서에 나타난 선민사상과 메시아사상을 담보한 역사적인 미래 희망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민족에게 초첨이 맞추어진 공동운명체로서의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한국교회, 민주적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 중요

역사 속에서의 미래희망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의 수난기에 들어와 운명을 함께하며 성장했다. 일제 식민지의 운명 앞에서 민족의 개화운동은 기독교와 서구문명이 같은 것으로 취급하며, 전개되었다. 한마디로 기독교는 개화운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서구문명과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아 민족 침략세력에 맞서 민족적 저항운동을 벌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박순경 박사의 저서인 <민족통일과 기독교>와 안병무 박사의 저서인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는 이것에 대한 평가를 분명하게 내리고 있다. 민족적 저항운동이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민족의식을 깨달은 기층민중들이 3.1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다는 것이다.

일제의 폭력정치에 기진해 있을 때, 교회는 점차 개인주의 피안으로의 도피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민족적 감정을 잃어버린 적은 없다. 다만 힘을 잃어버린 교회는 3.1만세운동에서 싹튼 민족 주체의식이 약화된 감상적인 민족주의에 눌러 앉았다. 그리고 조선의 가난한 민족을 향해 ‘예수 믿고 천당 가라’, ‘축복’, ‘영적각성’ 등을 내세운 개인구원을 강조하기에 바빴다. 성서에 나타난 민족구원과는 정반대의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 이 같은 천박하고, 싸구려 복음은 오늘 현대기독교 정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영미의 교파주의를 이식시킨 선교사들도 만찬가지였다. 심지어 선교사들은 본국에 보내는 선교보고서에서, 3.1운동에 참여한 애국자들을 ‘폭도’로 매도하기도 했다.

해방과 함께 민족분단이라는 쓰라린 현실 앞에서 한국그리스도교는 감상적인 민족주의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북한의 공산체제를 뿌리치고, 대한민국을 선택했다. 그것은 민이 주체가 되는 민족이어야 참민족이라는 것을 행위로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는 의식화되지를 못했다. 그리스도교와 구미문명을 일치시킨 선교초기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는 이 민족을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참민족의 구체성에 대해서 방관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것은 민족적인 문제를 방관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몰각한 채 교회성장에만 급급했다. 그럼에도 한국기독교는 민족의 염원인 민족통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기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문제는 행동하지 않는 기도였다는데 있다. 그리고 민족통일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민족통일을 이야기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의 복음도 마찬가지로 추상적이며, 감상적인 통일을 이야기하는 데만 급급했다.

한국의 기독교는 공산독재 아래 70년 동안 밀폐된 채 세뇌당하며, 노예화 된 것조차 모르게 된 북한동포 해방을 위한 주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만이 정부를 움직일 수 있고, 군주국가가 되어 김정은 한명을 위해 희생당하는 북한의 민족을 구원할 수 있다. 북한동포의 구원은 통일이후, 북한에 남한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이식시키는 것이 아니다. 남한의 기독교회가 주체적으로 통일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교회는 정치단체가 아니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종교적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는 이 땅에서 초월적인 하나님나라를 성취하는 곳이다. 인간에의 집약은 민족애이며, 그것의 구체화가 민중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의식화하며, 교회는 그러한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통일에 있어서도 민주적 민족통일을 대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민족통일을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계속해서 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의 내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내셔널리즘적인 국가와 인권

우리에게는 민족이란 개념이 정확하다. 그러나 서구의 국가들은 민족이란 개념이 모호하다. 그것은 현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서구는 켈트족, 게르만족, 노르만족 등이 혼합되어 나라를 형성했다. 영국은 켈트족, 게르만족, 노르만족, 스코트족의 혼합체이다.

섬나라인 영국이 이렇게 혼합체인데, 유럽의 국가들은 더욱 혼합덕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그것은 언어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영국만 하더라도 영어, 프랑스어, 웰즈어를 사용한다. 그러하면서도 민족이라는 것을 추구했다. 영국이 앵글로색슨족, 독일이 게르만족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열등감에서 극복하기 위해서 민족을 찾았다. 특히 서구의 문화는 그리스도교에 의해 형성됐다. 한마디로 서국의 국가들은 ‘내셔널리티’를 만들어 냈다.

이에 비하면 우리에게는 민족이란 정의가 필요 없다. 그것은 ‘한민족’이라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민족이라는 뜻이 한 번도 흐려지지 않았다. 혈통, 언어, 지역 등으로 볼 때 수천동안 그대로 유지해 왔다. 국가는 없었어도, 민족은 없었던 일이 없다. 공동체로서의 국가형성을 이룩할 결정적인 요소를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가 입증하고, 지금도 분단되었지만 민족통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 국가들이 혈통이나, 언어와 같은 공통분모를 갖지 않았는데도, 강자로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교를 통해서 히브리 민족사상인 선민사상과 역사의식으로서의 미래희망, 그리고 민족적 메시아사상을 배웠다. 히브리 민족이 수천년을 주관과 영토, 말까지 잃어버렸어도, 살아남은 것은 이 3대 신념 때문이다. 여국이 국가의식 형성에서 히브리 민족사상인 3대 신념을 자기들 것으로 받아들이고, 국민들에게 주입시켜 대영제국을 이루었다. 이것은 서구의 대부분의 나라가 국가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받았다. 서구의 내셔널리즘 확립은 개인의 존엄성을 인정하며, 권리와 자유의 폭을 넓히는데 경쟁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존 밀턴은 “내셔널리즘이란 권위로부터 개인의 자유확립이요, 정부나 교회에 대한 개인 인격의 자기주장이며, 또한 예속과 미신의 멍에로부터 인간구출”이라고 했다. 독재자라고 비난을 받았던 크롬웰도 “양심의 자유와 국민의 자유, 이 두 개는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쟁취해야 할 신성한 것이다”고 했다. 존 로크는 개인의 자유, 위신 및 행복이 일체의 국민요소라고 단언했다. 이것은 영국이라는 국가에로 국민을 결속시켰다. 유럽국가들도 이러한 영국의 영향을 받았다.

이 때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이것은 봉건적 국가체제의 종언을 알리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유, 평등, 인권사상을 가져다가 주었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정초작업을 이룩한 것이다. 1789년 8월의 인권선언은 법으로 제정, 선포된 것이다. 인권이 법에 의해 보호되는 자유로운 국민적 통일로 이루어지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북미로 건너가 새 나라를 건설한 청교도들은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 ‘같은 창조주에 의해서 일정한 상호 불가침적 개인의 권익보호’, ‘자유 및 행복추구의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라는 것을 골자로 한 헌법을 만들어 냈다.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았다. 한마디로 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국가관이 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민족은 있어도 투철한 주인의식을 가진 백성이 없었다. 피의 동질성을 분단에 있어서 아무런 힘이 없다. 북한정권은 국제공산주의 슬로건을 내세워 인민의 해방을 운운한다. 그러면서 봉건적 통치사상을 그대로 유지한다. 인민을 완전히 노예화 시켰다. 그것은 김일성이 자식인 김정일에게 후게자를 넘겨주고, 김정일은 또 자식인 김정은에게 후계자를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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