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지난 19일 청주 한 아파트에서 자녀 2명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40대 부부의 일가족 자살사건은, 이웃과 가족, 아니 탐욕과 욕망에 길들여진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살해했다는 감상적인 말로 위로해 본다.

왜 이들 일가족은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했을까(?) 모두가 금융권과 사채를 빌려 무리한 투자가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살을 하려면 혼자만 하지, 왜 죄 없는 아이들까지 죽음으로 몰아갔느냐(?)고 묻는다. 분명한 것은 부모의 빚 때문에 아이들이 ‘죽임’을 당한 것이다.

큰 딸 역시 아빠와 엄마가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을 때, 함께 시달리고 아파했을 것이다. 그것은 둘째 딸(12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인들은 왜 무리한 투자를 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고 말한다. 그리고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아이들까지 죽였느냐고 비난한다.

이들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는가(?)는 이들 가족이 남긴 유서에 그대로 배어 있다. 15세 큰딸은 “빚 때문에 힘들다. 먼저 가서 미만하다” 등의 유서를 남겼다. 한마디로 안타깝다. 왜 부모의 무리한 투자가 아이들을 “‘죽임’에 당하게 했느냐”는 것이다. 부모의 죽음은 자살일지 몰라도, 아이들의 죽음은 살해이며, ‘죽임’을 당한 것이다.

A씨 부부는 청주 인근에서 주유소 2곳을 운영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벌이가 줄어들어 경영난을 겪은 것으로 유족들의 조사결과 확인 됐다. A씨 부부는 주병사람들의 말만 듣고 금융권과 친척 등에게 손을 빌려, 무리한 투자를 하고, 수십억원을 날린 것이 화근이 됐다. 4명의 가족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경찰은 “외상과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볼 때 채무에 시달린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경찰은 A씨의 장인으로부터 “딸 내외가 연락이 안 된다”고 신고를 받고, 119 구조대와 함께 A씨의 아파트에 출동해 잠겨있던 문을 열고 들어가 일가족 4명이 숨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분명 청주 A씨 일가족 4명의 자살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에 대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이들에게 주변사람과 가족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살과 살해사건은,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가 준 탐욕과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진 살해사건이라고 규정짓고 싶다. 하나님은 동생 아벨을 살해한 카인에게 “네 동생(이웃)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묻고 계시다. “네 이웃이 어디에 있느냐”고…

조그만 관심과 배려가 있었더라면, 청주 A씨 일가족의 극단적인 자살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A씨 일가족 자살사건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이다. 앞으로 인정공동체가 메마른 현대사회에서 계속해서 일어날 사건이다. 특히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공동체가 작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

가정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가장 작은 공동체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 자매, 어머니라고 했다.(마가복음 3장31-35절).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아니 인류 모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찾고 계신 “네 동생 아벨(이웃)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에 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네 형제, 자매, 어머니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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