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기일(忌日. 해마다 돌아오는 제사)은 물론, 추석명절, 구정명절 등에 제사(祭祀)를 한다. 따라서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부모(조상. 가족 등) 제사도 안 지낸다.”는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이로 인해 심하게는 형제간에 폭력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기독교인들 중에는 추도식(追悼式) 또는 추모식(追慕式)으로, 하나님께 예배함으로 이를 “전도의 기회로 삼는다.”는 목적을 두고 행하는 이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엄존 한다. 그렇다면 성경적 지혜를 발휘해 믿지 않는 이들의 비난을 해소함은 물론, 그 어떤 것도 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등과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럼으로 ‘상례식(喪禮式)’을 ‘성안예식(聖安禮式)’으로 하자는 제안에 이어, 추도식[追悼式 추모식(追慕式)]을 ‘추성식(追聖式)’으로 하자는 제안을 한다. 이는 하나님께 예배함은 때, 장소, 회수 등으로 제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도식[追悼式. 추(追)=좇을 추. 따를 추. 도(悼)=슬퍼할 도. 식(式)=법 식]
= 죽은 사람을 슬퍼하며 그리워하는 뜻으로 치르는 의식.
추모식[追慕式. 모(慕)=그리워할 모. 그릴 모]
= 죽은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뜻으로 하는 의식.
따라서 성경(聖經)에 입각하여 추성식(예배)[追聖式(禮拜)]이라 함이 좋을 듯하다. 추성식(예배)[追聖式(禮拜) = 좇을 추. 따를 추. 성(聖) 성스러울 성. 성인 성. 거룩 성. 법 식]
= 예수님. 믿음의 선진들(부모님 등 포함)의 신앙의 모본(模本)을 따라 성도(聖徒)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써, 거룩한 삶을 누리며, 추구(追求)하는 의식(예배).(마 5:11-12. 막 12:18-27. 롬 12:1-2 등 참조) 추구[追求 = 좇아 구하는(따르는)

위로(慰勞)의 인사(人事)?
명복[冥福. 冥(어두울 명. 어두울 면. 1.어둡다. 2.밤. 3.깊숙하다. 4.하늘. 5.바다) =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이란 뜻으로, 기독교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될 말이다.
따라서 “명복(冥福)을 빕니다.” 보다는
1. 부활소망신위(復活所望信慰) 곧 “부활의 소망으로 위로 받으십시오!”
2. “성복(聖福)을 누리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3. “영생복락(永生福樂)을 누리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4. “성안(聖安) 중이심을 믿습니다!”
5. “거룩한 안식(安息) 주이심을 믿습니다!
등으로 위로하면 좋을 것 같다.

영면[永眠. 眠(잘 면. 쉴 면. 볼 민. 1.자다. 2.쉬다. 3.보다. 4.눈을감고 잠. 5.누워서 쉼) = “영원히 잠든 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죽은 사람의 사후 행복을 비는 불사(佛事)”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 또한 기독교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는 기독교에서는 “영원히 잠든 다”는 말이 있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부활(復活)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안(聖安) 곧 “거룩한 안식(安息)”이라 하지 않는가?
=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성안[聖安. 안식(安息)] 이란 말은, 영면(永眠)과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안식[安息. 息(숨쉴 식. 1.숨 쉬다. 2.한 호흡. 3.낳다. 4.자라다. 5.번식하다)>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6)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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