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 하였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새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바라본다 라고 하는 것은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합니다. 볼 수 있는 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가 없습니다. “내 눈을 열어 주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하소서”[시119:18] 무엇을 봅니까, 단순히 성경내용에 나오는 원리를 보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온 몸이 어둡다 하였습니다. 그 눈이 밝아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 눈에 하나님이 많이 채워져 있어야지 만이, 그래야지 만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그 성령의 힘으로 능력의 역사 하는 자리에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데 담대히 나아가는 것은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리의 눈에 우리를 도우시는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보여졌을 때에 우리는 대단한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단지 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하면 얼마큼 하겠습니까, 우리가 힘을 써서 집을 지으면 얼마나 큰집을 지을 것이며 우리가 헌금을 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가지고 있고 우리가 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드릴 수 있는 것, 정말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힘은 어마어마하신 분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셨고 만물을 주관하시며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이 모든 자연을 움직이시며 능치 못한 일이 없는 그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그 어마어마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눈이 열려 있고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있느냐 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1장에 말씀했습니다.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여러분들은 무엇을 보려고 이 세상을 살아가십니까? 예수님이 질문을 합니다. 고운 베옷을 입은 사람들이냐, 그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성도들이 화려한 인생과 육신의 욕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러한 인생을 원한다면 주님 안에 있지 않고 세상으로 가야 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채우고 경험할 수 있은 시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져야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못 보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평생을 열심히는 살았지만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통하여 제대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경험하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우리가 남겨진 삶들을 붙들려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그 어마어마하신 능력을 나타내 보이실 겁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그러한 능력을 경험하는 자리에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에 어마어마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말씀을 듣고 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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