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 올라가
메밀 베갯속을 널었다
나의 잠들이 좋아라 하고
햇빛 속으로 달아난다
우리 나라 붉은 메밀대궁에는
흙의 피가 묻어 있다
지구도 흙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가을이 더 잘 보이고
나는 늘 높은 데가 좋다
어쨌든 세상의 모든 옥상은
아이들처럼 거미처럼 몰래
혼자서 놀기 좋은 곳이다
이런 걸 누가 알기나 하는지
어머니 같았으면 벌써 달밤에
깨를 터는 가을이다

▲ 문 현 미 교수
가을은 외갓집 장독대 항아리에도 와 있고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들녘 길섶에도, 장터에서 푸성귀를 파는 촌로의 손등에도 와 있다. 그런가 하면 빌딩 숲 사이 벤치에도 기웃거리고, 일자리를 찾아 다니는 어느 발걸음에도 서성거리고 있다. 아침과 저녁의 일교차가 큰 그 간격만큼 우리들 가슴에도 가을이 스며들고 있다. 옥상의 빨랫줄에 걸린 하얀 속옷들이 가을 바람에 흔들린다. 그리 넓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좁은 곳도 아닌 옥상, 여기엔 어린 시절 꿈의 흔적들이 묻어 있다. 지금도 어디서 누군가는 옥상의 평상에 누워 끝없이 펼쳐진 뭉게구름 사이로 꿈의 엽서를 띄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메밀꽃 대궁은 붉어서 황토와 잘 어울린다. 붉은 꽃대궁에서 피어 올린 하얀 메밀꽃들이 소금을 뿌린 듯 일렁이는 밤이면 시인이 아니라도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리라. 마음의 결을 스치는 가을 햇살처럼, 먼 데 그리움 언뜻 머무는 높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 시인의 마음이 시 한 편에 녹아 있다. 어떤 관념의 찌꺼기나 군더더기 같은 게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시이다. 읽다 보면 어느새 동심으로 돌아가 혼자 옥상에서 ‘거미처럼 몰래’ 놀고 있거나 고향 마루에 걸터 앉아 있게 된다. 메밀밭이 지천인 강원도 특유의 정서를 바탕으로 담백하면서도 정밀하고 고요하면서도 동적인 이미지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명징한 시이다. 오래 숙성되어 발효된 시의 향기가 은은한 달빛 타고 내면 깊숙이 밀려드는 가을날이다. 주 하나님 지으신 계절에 대한 감사가 마음 속 보름달로 두둥실 떠 오른다.

백석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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