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3. 말씀과 죄의 회개, 한국교회의 분열

초대 한국교회는 역사적 칼빈주의 개혁신앙에서 은혜의 수단(media gratia)으로 강조하는 세 가지, 즉 말씀, 기도, 성례를 통해서 새로운 능력을 부여받았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입게 되어는 방법은 직통계시나 개인적인 신비적 체험이나 환상이 아니라, 공적인 모임에서 말씀의 선포를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성령의 역사는 오직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기록된 말씀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권능이 외적인 은혜의 방편들에 의해서 제한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교훈의 일반적인 방법에다가 우리를 묶어 놓으신다.” 성령은 말씀의 부흥을 일으켜서 심령에 변화를 주시면서 기도에 능력을 불어넣으신다.

그러나 자신의 영적 우월함을 과시하는 자들이나 영적인 교만에 빠진 자들, 소위 신령하다는 평판을 받는 사람들을 통해서 주시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사모하는 자들은 이처럼 공적으로 선포되어지는 말씀과 공적으로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 성령의 역사를 주장하면서 성경을 제쳐 놓은 체로 개인적인 내적 체험으로 축소해서는 안되며, 특히 퀘이퍼파에서나 신비주의 운동가들이 극히 개인주의적인 내면의 문제로 취급하려는 방법론은 결코 성경적인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부패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면서, 믿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아들여서 사죄를 받는 것이다. 그냥 개인적으로 무작정 성령의 강림을 기다리고 있다거나, 금식하면서 혹은 기도하는 주간을 설정하고서 그 사이에 명상을 하면 성령이 찾아오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객관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내적인 명상이나 묵상으로 혹은 금식이나 고행이나 수행으로 성령의 감동과 역사하심을 체험하려는 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방법론이 아니다. 하나는 지나치게 영적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신체적 물체적 방법론을 채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히브리서 3장 7절에 보면, 성경에 기록된 바는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다”고 되어있다. 이사야 59장 21절에 성령을 우리에게 내려주신다고 되어있는데, 이것도 역시 성령의 유효적인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감동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믿음과 회개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막 1:15). 중생한 성도에게는 믿음과 회개의 열매가 맺혀지는 이는 물론 사람의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새 생명을 받아서 새사람이 되어지면,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회개가 나타나게 된다. 죄와 회개는 매우 핵심적인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회개는 성도들의 심령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하심을 드러내는 증표이다. 중생을 체험하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성도들이 드러내는 모습이다.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치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물론 중생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성령의 사역에 뿌리를 두고 있으로 죄인이 믿음의 반응을 드러낼 수 있으며 회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을 때에 그들의 마음과 심령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생각하면서 회개하였다 (신 302).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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