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전쟁의 수단은 무력만 있는 게 아니다. 무력 못지않게 심리전도 있다. 출애굽 백성들이 모압 평원에 진을 치자 모압의 왕 발락은 잔뜩 겁을 먹게 된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상대할 수 없음을 알고, 마법사 발람을 매수해서 주술로 이스라엘을 물리칠 계략을 꾸민다. 발람은 겉으로는 야훼 하나님의 사람 같은데, 실은 마법의 수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인격으로 섬긴 게 아닌 도구로 섬긴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매수된 발람은 도중에 하나님의 사자에게 붙들려 오히려 모압을 저주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주술을 하게 된다. 발락은 더 많은 제물을 들여 발람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사주한다. 그때마다 하나님께 붙잡힌 발람은 발락의 사주와는 달리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에돔을 저주한다.

당시의 상황을 민수기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민 23:23).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는 사술과 복술인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 즉 ‘진리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마술로는 진리를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발람은 끈질겼다. 자신의 사술과 복술이 먹히지 않자 이번에는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 계략을 사용한다. 이스라엘 남자들을 바알의 음탕한 축제에 초대해서 미디안 여인들을 품도록 한 것이다(민 31:16). 그리하여 바알의 농탕한 축제에 참가한 이스라엘 남자들은 괴질에 걸려 무려 이만사천이나 죽게 된다(민 25:1-9). 광야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바알 브올의 달콤한 초대는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눈앞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 북한의 핵위협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라 지도자들의 결핍된 양심과 윤리의식이다. 보수정권 들어 유달리 국가 안보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날이 갈수록 국가 안보가 걱정스러운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입으로는 ‘민생’ ‘위기’ ‘안보’를 주술처럼 되 뇌이지만, 양심 수준은 바닥이고, 진실은 한사코 덮으려 하고,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만 몰입하는 이들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주술정치로는 나라의 안보를 보장할 수 없다. 야당 비난하는 것으로 집권 여당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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