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 내내 잘려나간 시간들이
비로소 강물로 이어지고
그 위에 당신이 실려옵니다
사랑의 눌변을
우황으로 앓던 그 세월
이제야 놓임 받아
내 영혼의 빈 잔에
들어와 눕습니다
수화(手話)로만 통하던 먼 하늘
이 시간 낙엽이 흩날리지만
갈수록 투명해지는 나의 청력
내 안에 고여 있는 샘물,
아 당신이 길어가는 소리
어제도 오늘도
당신이 길어가는 소리
< 『진안문학』 22호에서 발췌>
* 허소라 시인: 전북 진안 출신. 『자유문학』 시 등단.
군산대학교 명예교수. 석정문학관 초대관장. 한국기독교문인협회 전회장
전북문화상 등 다수
이런 전제에서 이 시에서는 의도적으로 미학성을 강조한 부분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사랑을 가슴에 품고 가슴앓이 하는 모습을 ‘사랑의 눌변을/ 우황으로 앓던 그 세월’이라 표현한 부분이나, 나이가 들면 난청이 되는 일이 순리지만 화자는 더 잘 들리게 된다고 역설적으로 말하는 ‘갈수록 투명해지는 나의 청력’의 부분에서 시적 탄성이 극대화 되고 있다. 물론 역설적인 진술은 겉으로는 모순이다. 그러나 나이와 달리 가을이라는 인생의 계절에는 하나님의 소리가 더 잘 들린다는 내용처럼, 모순을 통해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시의 형태인 것이다. 또한 ‘내 안에 고여 있는 샘물,/ 아 당신이 길어가는 소리’도 하나님과의 반응을 보여주는 시어다. 샘물은 인간의 깊은 영혼의 소리다. 길어간다는 말은 하나님께 기도가 잘 상달된다는 말이다.
이 작품은 청각과 시각과 촉각 이미지를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현대시의 미학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백에 급급하여 간과하기 쉬운 기독시인들에게 신앙시도 미학성의 바탕 위에서 예술이 된다는 정의를 확실하게 상기시켜 주고 있는 작품이다.
한국기독교시인협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