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나라를 위해 죽은 자 거지취급 당하고 여행가다 죽은 자 황제 대우 받는다.’ 이는 한 일간 신문에 보도된 기독당의 프랭카드 내용이다. 그 내용인 즉 기독당이 세월호 희생자와 6·25 참전용사를 비교하며 ‘6·25참전용사들은 최고 10만원 약값 지원받고 세월호 애들은 최고 대우받고, 나라를 위해 죽은 자 거지취급 당하고 여행가다 죽은 자 황제 대우 받는다’는 것이다. 이 보도를 읽고 프랭카드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몰려오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도 무모하고 무감각한 판단으로 무슨 정당을 하려는가!

어떻게 세월호 희생자와 6.25참전 용사가 동급으로 비교될 수 있는가?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과 그 가치는 철없는 어린 것들이 하하호호 즐거운 수학여행길에서 졸지에 당한 비극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비록 세월호 보상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호국 영웅들과의 차이는 있다고 할지라도, 세월호 참사의 현실적 비극을 바라보는 국민적 감정은 그렇게 해주고라도 미안해하는 마음인데, 자칭 정치집단이 그런 흐름조차 대변 못하는 실력으로 무슨 정치를 하겠다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기독당이 오직 기독교적 가치와 교회만을 위한 정당이라면 지금 당장 해산해야 한다. 적어도 기독당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 땅에 바른 통치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그 어느 정당보다도 앞장서서 민주와 정의와 인권과 평등을 위해 싸워야 하며, 이를 위해 약자와 소수를 대변하고 차별과 분리를 거부하며, 가진 자와 배운 자 그리고 자산가와 기득권의 반성과 사회적 환원과 정당한 역할을 강조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독당이 정당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며 가치이다. 그러나 지금 기독당은 그 원칙에서부터 빗나가고 있다.

반면교사로서 해산된 통진당을 보라. 어디 그들이 감히 의원 한석이라도 얻을 수 있던 정당이었던가? 그런데 그들은 비록 해산되기는 했지만 한 때는 지금 야권과 더불어 공동정권을 구성할뻔할 정도로 정치적 약진을 거듭했다. 그들의 정치적 성장의 배경에는 비록 정치적 목적을 위한 위선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철거민들 옆에 있었고, 처절한 노동투쟁의 현장에 있었고, 춥고 배고픈 이들과 함께 있었고, 소외되고 아픈 이들의 곁에 있었다. 이것이 정통야권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득표력을 지닌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배경이 되었다.

지금 기독당을 비롯한 한국 기독정치세력들은 참으로 가소롭고도 안이하게 현재 기독교 교세에 정치세력의 기초를 두려는 오류를 지속적으로 범하고 있다. 필자는 이 글 이외에서도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결코 정당화된 기독교 정치세력을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수도 없이 주장하였다. 기독교 정치세력이 지금도 간과하는 것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의 정치적 결정은 이미 수정 불가능하게 결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슬람과 동성애 이슈를 들이대며 대형교회들이 나서서 의원과 정당을 구분해 달라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전국구 의원 하나를 만들지 못한 20대 총선 성적표가 그것을 다시 증명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이번 기독당의 프랭카드는 중대한 정치적 실수요 한국교회에 입힌 치명적인 상처이다. 6.25와 세월호는 비교불가능한, 결이 다른 사건임을 모르는 아마추어적 정치감각이 빚은 이 사건은 단순한 헤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강해져 가는 국민적 반기독교 정서에 기름을 부은 기독당의 일탈에 대한 한국교회 차원의 비판과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도 일부 기독인사들이 과도한 세월호 유족보상에 대한 불편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비록 나름대로 논리적 소신일지라도 여기에는 플러스 알파의 감성적 요인이 있음을 무시하면 한국교회는 역사 앞에서 죄인이 된다. 호국영령의 후손들에게 다시한번 미안한 마음과 세월호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올리며, 한국교회의 깊은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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