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조선의 집권세력이 아닌 하층민을 중심으로 통용되었다. 원래 세종 임금은 “나랏말이 중국과 다르고 문자가 서로 달라 한자를 모르는 조선 백성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우리말에 맞는 한글을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한글이 민중 속에 급속히 확산되게 된 데는 성경의 힘이 절대적이었다. 공자, 맹자의 유교에 젖은 사람들이 우리의 글 한글을 언문이라 하여 멸시 천대하고 있을 때에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글로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왔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반드시 한글이 전파되고, 한글이 전파되는 곳에 복음이 전파되어 서로 상승효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한글 성경을 단순히 강단에서 설교용으로만 사용하지 않고 개인, 가정 혹은 그룹별로 성경공부를 진행했으며, 이후 교회가 설립되면서 주일학교, 여름성경학교, 성서학원, 신학교 등에서 한글로 된 성경과 각종 교재가 배포되고 한글교재로 가르치게 되었다. 기독교 신자 수가 해마다 증가하면서 성경의 배포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는 곧 민중 들 사이에 한글이 얼마만큼 널리 퍼졌는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다.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한국교회의 부흥은 요원했을지 모른다.

더구나, 유교문화에서 한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천한 대우를 받던 백성들이 한글 성경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고 처음으로 글눈이 떠진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 밝힌바 비로소 “어리석은 백성들이 날로 쓰기에 편하게 하고자 한” 한글 창제의 깊고 숭고한 뜻이 실현되게 된 것이다.

한글은 수백년 동안 ‘언문’이니, ‘암클’이니, ‘규방 문자’니 하여 천대받아 왔다. 그런 한글이 기독교 성경과 합체하면서 일약 사서삼경의 한자와 같은 지위를 얻게 되었고, 성경의 한 자, 한 자가 그 내용과 함께 소중한 교훈이 되어, 이를 그대로 지키고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이런 우리글 한글이 인터넷 발달과 함께 마구 훼손되고 있어서 씁쓸하다.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줄임말과 외래어의 무분별한 합성이 근본없는 기괴한 신조어를 양산해 내고 있다. 간혹 인터넷으로 유통된 신조어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거부감없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국립국어원의 심의를 거쳐서 표준어로 제정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또래집단에서 잠깐 쓰이다 사라져 버린다.

더구나 인터넷 상의 신조어는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넘을 수 없는 간격을 만들어 언어뿐 아니라 의식의 단절까지 불러오고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이런 신조어들이 일상생활에 자리잡게 되면 한글의 정체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신조어를 재미삼아 자꾸 쓰다보면 본래 한글의 의미를 혼돈하게 되고 의미 전달이 되지 않는 문장이 널이 통용되면서 결국 한글이 훼손되고 마는 것이다.

한글과 성경은 130여 년 간 서로 상승효과를 가져오면 발전해 왔다. 그러나 범람하는 신조어 속에서도 성경만의 한글문체를 굳건히 지켜온 성경 또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교회 성장 둔화와 함께 성경의 보급도 줄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대상을 반영해 성경에도 줄임말과 신조어를 넣자는 말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한글이 성경을 통해 이 땅의 문맹을 깨치고 온 세상에 빛을 주었듯이 이제 그리스도인들이 말로만이 아닌 행함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빛의 사명을 감당하자는 것이다. 그 것이 2016년 한글날을 맞는 한국교회의 또 다른 미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