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환 목사
대한민국은 70-80년대 세계교회가 놀랄 정도로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부자되면서 90년도를 정점으로 교회는 쇠락하기 시작했다. 기독교인은 1300만명에서 700만명으로 줄었다. 일부에서는 500만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카톨릭은 1970년대 100만명에서 700만명으로 늘었다.

그것은 도시나, 마을마다 세워진 교회들이 교회의 역할을 충실하지 못한 결과 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군대를 비롯하여 경찰서, 교도소 등에 교회의 입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하나님나라 선교를 활발하게 벌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기독교가 대한민국의 국교로 착각할 정도였다.

한국교회는 조선말 선교초기부터 일본제국주의, 해방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많은 것을 얻었다. 대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다. 심지어 사회의 암적 존재로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부자로 변질된 나머지, 생활고에 허덕이는 농민과 노동자들에 대해서 아랑곳 하지를 않고, 호화스럽고 거대한 교회당을 건축하기에 바빴던 결과이다. 심지어 사채놀이하고, 다단계에 손을 대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교회들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기 위해, 호화로운 실내장식을 위해 교인들에게 헌금을 강요하기에 바쁘다. 이것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목회자를 평가하면서, 교회사이즈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교회가 부패와 몰락을 조장하는 집단이 되어버렸으며, 떠난 교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웃교회 교인을 빼앗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어찌 생각하면, 교회가 기업가 정신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모습을 이 땅의 국민들은 어떻게 평가 할 까?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도시교회는 부자교회이며, 가난한 사람들이 접근 할 수 없는 교회가 되었다. 기성교회와 가난한 사람, 노동자, 떠돌이, 병신, 거지들 사에 두꺼운 벽이 가로 놓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성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계속해서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는 교회의 존망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과, 부와 인적자원을 나눌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주여! 주여!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예수님과 등진 교회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부자 청년처럼 재산이 아까워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선교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삭개오는 재산의 반을 정리하여 하나님나라운동을 펼치는데 사용했다. 한국교회가 가던 길을 멈추고, 교회의 재산 일부를 가난하고, 병신, 떠돌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내놓는다면, 한국교회는 생명력이 넘칠 것이다. 70-80년대 광영을 다시 찾을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펼쳤다. 나눔과 섬김을 통하여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셨다. 또한 십자가를 통해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렇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이 계셨던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이 진정한 화해이며, 해방이라는 것을 교인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적대적이고 고통스러운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인천 갈릴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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