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서울 도심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훔쳐 달아난 소녀가 서울 서초동 소년 법원에서 홀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을 받았다. 이 재판을 주도한 김귀옥 부장판사는 무거운 보호처분을 예상하고, 쥐구멍이라도 들어갈 듯 어깨를 쭉 늘어트린 소녀를 향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따라 외치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요구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요구였다. 소녀와 방청석은 예상치 못한 요구에 당황했다. 소녀는 작은 목소리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고 입을 열었다. 그러자 중년 여성재판관은 더 큰 소리로 따라 외치라고 했다.

“나는 이 세상이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소녀는 큰 소리로 따라 외쳤다. 마지막 대목이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고 외쳤을 때, 소녀는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방청석도 숙연해 졌다.

재판관의 이 같은 행동에 주목된다. 비록 죄는 졌지만, 이 소녀를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이 소녀는 절도, 폭행 등 14번의 범죄를 저지른 전력이 있지만, 이 소녀가 자라온 환경을 보면, 이 소녀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이며, 소녀의 이웃이라는 것이다. 판사는 소녀에게 무거운 판결을 내리는 대신,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는 판을 내렸다.

판사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어려운 가정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장래 간호사의 꿈도 가지고 있었다. 이 소녀는 지난해 귀갓길에 남학생 여러 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소녀는 당시 후유증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홀어머니는 후유증으로 신체 일부가 마비되기까지 했다. 소녀는 학교 주변을 겉돌았고,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녔다. 결국에는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판사는 법정에서 지켜보는 방청석을 향해 외쳤다.

“이 소녀는 가해자로 재판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아이의 잘못의 책임이 있다면,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과 우리 자신입니다. 이 소녀가 다시 이 세상에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잃어버린 자존심을 우리가 다시 찾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가를 적신 판사는 눈물이 범벅된 소녀를 법대로 불러 세워 다시 외쳤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요.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그러고는 두 손을 쭉 뻗어 소녀의 손을 잡아주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법대가 가로막혀 있어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하구나”

이 판사의 판결은 참여관과 실무관, 그리고 방청인들까지 눈물을 흘리게 했다. 이 판사의 판결은 오늘 가치를 잃어버리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죄인들에게 삶의 가치를 교훈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죄인들을 위하여 왔고, 이들 가운데서 함께하며,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제사장들이 정결법과 안식일법을 내세워 죄인 취급했던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 속에서, 이들의 인권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활동하셨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과 대제사장들에 의해 고발돼, 로마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셨다.

그렇다. 이 소녀는 바로 이 땅의 힘없는 사람이며, 이웃에 의해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또한 이웃 가운데서 삶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 소녀를 법정에 세운 가해자이며, 이 소녀는 피해자가 아닌가(?)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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