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신명기는 초기 이스라엘 사회의 혼잡상을 전하고 있다. 당시는 이방 종교의 영향이 컸던 관계로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가증한 행위들이 백성들 사이에 성행했다. 예컨대 요술, 복술, 무당, 박수, 길흉을 말하는 자, 초혼자 등 온갖 해괴한 짓을 하는 자들이 사회 기강을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기만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마음을 혼잡케 하는 이들을 모두 쫓아내고(신 18:9-12),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 해줄 예언자를 세우시게 된다. 모세는 그렇게 해서 세워진 인물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거짓 예언자들이 그 시대의 언어를 혼잡스럽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명기는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신 18:21)라며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분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케 한다.

원래 남을 속이려는 자의 말이 더 화려하고 유창하다. 거짓 예언자는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기술자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뒤틀어서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자신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이런 거짓 예언자들이 기승을 부리면 세상은 참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세상, 불신으로 가득한 세상이 된다. 억지가 난무하고 진실이 억압되면 세상은 암흑세상이 된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수께서 오시기 전후 약 200여 년 동안은 하나님의 말씀이 끊긴 암흑 시대였다. 그럼에도 신명기는 저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세상을 혼란스럽게 할 때, 그의 말이 참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예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말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니, 너희는 제멋대로 말하는 그런 예언자를 두려워하지 말아라”(신 18:22). 자신의 행위로 증거를 보이지 않는 말은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다. 두려운 말씀이다.

오늘날 목회자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그럼에도 그 많은 말씀들이 행위로 증거되지 못하는 것은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 목회자가 시대의 갈등을 회피하는 걸 미덕으로 여기고, 시대의 갈등 속에서 해석되지 않는 말씀만 선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희망이 있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한다. 성경 말씀들은 그 시대의 갈등 즉 역사 현장에서 증언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살아 있는 말씀은 그 시대의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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