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은 종교개혁 기념주일이다. 세계교회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를 종교개혁주간으로, 31일을 종교개혁기념 주일로 지키고 있다. 특별히 올해 종교개혁주일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499주년, 즉 500주년을 딱 1년 앞둔 시점이라는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한국교회는 10여 년 전부터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념사업의 골자는 최근에 와서야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월에 제101회 총회를 마친 예장 통합과 기장총회는 총회 주제를 종교개혁 500주년에 맞춰 ‘교회의 본질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합동 대신 고신을 비롯한 주요교단들도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에 맞춰 의미있는 행사와 사업계획 추진에 들어갔다.

그러나 각 교단이 추진하고 있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이 종교개혁의 진정한 의미를 담아낼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이다. 각 교단 총회를 통해 보고된 추진 사업계획의 윤곽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일회성이거나 각 교단별 사업에 치우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슷비슷한 기념행사가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열릴 경우 특별한 의미를 집약하지 못한 채 예산과 시간 낭비만 가져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종교개혁 500주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면서 최근에는 교묘한 상술이 판을 치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주요 여행사들은 벌써부터 각 교단과 교회별로 내년에 유럽 종교개혁지를 돌아보는 여행상품을 판매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을 닮기 위해 유럽의 종교개혁지를 순방하는 프로그램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으나 500년 전 종교개혁자들의 숨결을 느끼고 그 정신을 되새기자는 뜻이 일회성 패키지여행 속에 그냥 묻히는 꼴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CBS기독교방송은 지난 10월 6일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금은메달을 발매한다고 발표했다. 주요 교단 신임 총회장들을 대거 초청해 성대한 행사를 가진 CBS 한용길 사장은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 종교개혁 500주년에 발행되는 기념메달은 역사에 기록될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며 “크리스천들이 모두 이 기념메달을 한두 개씩 소장하고 의미를 되새기면서 신앙을 새롭게 결단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념메달 구입을 권장했다.

이에 대해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교계에서는 CBS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 슬로건을 ‘나부터’로 정했다고 했을 때 “나부터, 작은 것부터, 지금부터” 회개하고 돌이키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선도해 주기를 바랐는데 고작 고가의 금은메달 판매라니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를 기념하고 간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골드메달이든 고가의 여행상품이든 판매하는 것이 그 의미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무조건 흥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만큼 한국교회가 아직도 구체적인 준비가 미흡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또 500년 역사를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론 가운데 하나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가치는 믿음으로 의에 이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1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그 1년의 성패는 교단이나 연합기관 등에서 행사를 주도하는 지도자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성도 전체에 부여된 과제라고 있다. 그래야만 기독교가 교회 개혁의 불씨를 사회 저변에 확산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외친 제자들의 실천적 믿음이 오늘 한국교회에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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