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는 을씨년스럽다. 짙푸르던 나뭇잎들은 하루가 멀다며 변하고 있다. 나뭇잎들도 겨울이 오기 전에 제 역할을 다하느라 분주한 모양이다. 제 시절을 만난 듯 호기를 부리던 권력의 속살이 드러나고 보니, 온 나라가 마치 사이비 교주에게 농락당한 것 같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 누가 누구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선실세를 교주처럼 떠받든 가련한(?) 대통령을 위로해야 할지, 그런 이를 대통령으로 모신 국민을 위로해야 할지. 아니면 대통령 말씀 충성스럽게 받아 적는데 열중했던 참모들과 각료들을 위로해야 할지, 대통령 호위무사가 되어 목숨 건 단식도 불사했던 당 대표를 위로해야 할지 도무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던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을 아마 ‘최순실’은 몰랐던 모양이다. 이런 사람이 한 나라의 통수권자라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다. 역시 하늘 아래 온전한 것은 없다. 인간이 하는 일 치고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란 없다. ‘내가 하는 일에 감히…!’ 라고 찌푸린 얼굴은 자가당착을 불러들인다. 맹목적인 충성심 그리고 맹목적인 사랑의 열정은 올곧은 사람을 배반자로 낙인찍는다. 함께 가야할 동료를 적으로 단정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의 열정으로 하는 일일지라도, 자기모순과 잘못에 대한 개연성을 항상 열어놓아야 한다.

돌이켜보면 세상은 악이 제거됨으로써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열정이 성숙해야 비로소 성숙해진다. 사랑의 행위가 사회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성숙한 나라가 있고, 미개한 나라가 있다. 성숙한 나라는 개개인의 사랑이 사회로 확대되고, 시스템으로 정착됨으로써 성취된다.

성숙한 나라는 대통령을 교주처럼 섬기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에서처럼, 공권력이 국가의 권위를 앞세워 억울한 이들을 회피하거나 괴롭히는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미개한 나라이다. 성숙한 나라는 불의의 사고를 겪거나 억울한 이들을 적극 부조하고,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일은 의무로 여긴다.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이 ‘대한민국의 비극’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여기서 좌절할 수 없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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