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을 한 번 쭉 훑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놈이 살고 있는지
흙탕물로 곤두박질치는 鰍
그 꼬리를 기억하며 網을 갖다댄다
다리를 휘이휘이 감아오는
물풀 같은 글자들
송사리 추(鯫), 잉어 추(鱃), 쏘가리 추(鯞)
발끝으로 조근조근 밟아 내리면
잘못 걸려드는
올챙이 거머리 작은 돌맹이들
어차피 속뜻 모르는 놈 찾는 일이다
온 도랑 술렁인 뒤 건져올린
비린내 묻은 秋는 가랑잎처럼 떨구고
비슷한 꼬리의 鯫, 鱃 , 鯞만
자꾸 잡아 올린다.

▲ 문 현 미 시인
어떤 새도 인간의 상상력만큼 높이 날 수 없다는 일본작가 테레야마 수지의 말이 떠오른다. 상상의 날개를 달고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다고 생각만 해도 기쁘다. 상상의 힘으로 천국으로 가는 길을 걸을 수도 있고 눈부신 오로라의 빛을 붙들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멀리 반짝이는 별들 사이를 오갈 수 있으며 우주의 끝자락이 어디쯤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수많은 직업군 중에서 상상력이 특별히 필요한 직업은 문학 작품을 쓰는 작가이다. 특히 시인은 몇 안 되는 언어를 짧은 형식에 담아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하므로 탁월한 상상력을 지녀야 한다. 천수호 시인은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로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오래 전 그는 “뇌에도 주름이 있듯, 언어의 주름 사이에도 비의가 있을텐데 그걸 드러내고 싶은 시를 쓰고 싶다”라고 했다. 시인을 일컬어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하는데 이런 칭호가 천시인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옛날 농촌에서는 폭염의 여름 한 철을 지나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미꾸라지를 잡아서 추어탕을 끓여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잔치음식처럼 먹었다고 한다. 미꾸라지는 가을에 영양이 제일 풍부해서 미꾸라지 추鰍자 대신 가을 추秋자를 써서 끓여 먹는 생선국이다.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 주는 시골 음식으로 추어탕만한 게 없다.

천시인은 시골 도랑을 훑으며 미꾸라지를 잡는 생생한 경험을 옥편 찾기로 옮겨 온다. 미꾸라지 추鰍자를 찾기 위해 송사리 추鯫, 잉어 추鱃, 쏘가리 추鯞를 훑으며 결국 가을 추秋를 가랑잎처럼 떨군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의 생동감으로 시를 읽으면서 어느 새 독자는 도랑에서 미꾸라지가 파닥거릴 때 튀어오르는 물비늘에 눈길이 머무른다. 시인은 언어에 깃들어 있는 비의를 좇아 언어의 맛과 멋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 이만한 상상력이면 우리 모두 가을 秋에 푹 빠지게 한다. 추어탕 한 그릇에도 가을이 그득한 것을.

백석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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