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사람들은 좁은 집에서 살다가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우리도 이 몸에 살다가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사도바울은 우리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고후5:2) 라고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구원 받은 성도들은 탄식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항상 즐거움만 있는 줄로 생각했습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바울은 탄식 가운데서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도 제한된 영역 안에서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체의 고통, 정신적 고통을 인하여 탄식합니다. 어떤 분들은 정신적 고통으로 자살까지 합니다. 집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탄식가운데 살아갑니다. 바울은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탄식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들 마음속에 쉼이 없습니다. 갈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육체 가운데 살 때에 짐 진 것 같은 고통이 있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 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22)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탄식하며 몸의 해방을 기다리는데 이는 육체 가운데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이 죄악가운데 사는데 의롭게 사는 것은 고통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고 순종하기를 원하나 우리의 정욕이 우리가 원하는 것만큼 주님을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싶으나 원수를 볼 때 그러지 못하고 분개함이 일어납니다. 그런 자신의 옛 성품을 인하여 괴로워합니다. 우리의 육체는 우리가 원하는 데로 따라오지 아니합니다. 이런 것이 고통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육체에서 해방 받을 날을 고대며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 합니다(고후4:16)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감격스럽습니다. 성경은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후5:5)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말씀을 듣고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하고 염려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이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돈을 빌릴 때 빌리는 사람이 보증을 세웁니다. 빌려주는 사람이 빌려준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보증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빌리는 사람으로 하여금 꼭 갚도록 하기 위해 연대 보증을 서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새로운 몸을 주신다고 약속하시고 오히려 믿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친히 성령으로 보증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영생을 주셨다고 약속을 하셨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인(도장)쳤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에 갈 것과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에 대해 성령으로 보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또한 자기이름으로 맹세하여 보증하셨으므로 더 이상 보증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확실한 것입니다. 이를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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