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온통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인해 분노에 휩싸였다. 국민들은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며, 촛불시위를 하는 등 행동에 들어갔다. 또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최순실 게이트의 인물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렇게 최순실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이 분노하며,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데, 유독 기독교인들만이 박근혜 대통령 감싸기에 나섰다. 또한 전기영 목사가 최순실씨의 부친 최태민 목사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증언하고 있는데도, ‘목사가 아니다’며, 한국교회의 치부를 감추기에 바쁘다.

종합총회가 안수한 목사

최태민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가 안수한 목사이다. 전기영 목사의 증언에 따르면 최태민 목사는 당시 총회장이었던 조현종 목사에 의해서 안수를 받았다. 그 후 최 목사는 육영수 여사가 살해된 후, 비통에 빠져 있던 박근혜에게 접근, 권력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주교, 불교, 기독교를 혼합한 영세교를 만들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해 주듯,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당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태민과 최순실 두 사람의 사교(邪敎)에 씌어 이런 일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었다. 또한 과거 최태민 목사가 스스로를 ‘미륵’이라고 발언한 것을 토대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미르’와 ‘K’를 합하면 ‘미륵’이 된다며 관계성도 밝혔다.

최태민 목사는 피살된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박근혜 대통령을 도우라고 해서 만났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76년에는 여러 단체를 통합한 새마음봉사단을 설립했고, 박 대통령이 명예총재를 맡았다. 이 때부터 최 목사 일가와 박 대통령의 40여년의 기나긴 인연은 계속되어 왔으며, 오늘 국정농단이라는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각종 비리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독교 포털뉴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도, 최태민 목사와 관련 “대통령의 딸과의 친분관계를 내세워 정계와 재계, 정부관료 등과 접촉해 인사, 승진, 공천, 공사수주 등의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고 입회비와 후원금을 빼돌렸다”고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수사자료에는 모두 44건 3억1700만원(현재 약 50억원)에 달하는 최태민 목사의 비리사실이 적시돼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당시 중앙정보부가 최태민 목사에 대해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정의 보고를 받고서도, 최태민과 박근혜의 친분을 깨지 않기 위해 최 목사를 적극 옹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박 대통령은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최 목사의 말을 철저히 신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 목사도 마치 최면술을 걸어 정신과 육체를 조종하듯이 박 대통령을 지배했다는 것이 현재까지의 정황이다.
최 목사가 죽고 나서는 그의 딸인 최순실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박 대통령을 좌지우지했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아 비단 각종 언론에서 밝혀진 대통령 연설문까지 가지 않더라도, 평상시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 쉽게 감지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5년 5월 5일 어린이날 행사에서는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는 발언을 했고, 같은 해 11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등 도통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해왔다. 박 대통령의 과거 혼, 기운, 우주 발언을 살펴볼 때 최태민씨의 영세교가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영세교 교주에 휘둘려 국가적 망신 자초
일부 목회자들 최씨의 국정농단에도 종북 놀음에 빠져

한 사이비 교주에 흔들린 교회

한 나라의 최고통치권자가 사이비로 불리며 영세교 교주 행세를 한 개인에게 휘둘리고, 또 그 딸에게 사로잡혀 국가적 망신을 좌초한 부분이다. 국민들의 공분이 사그라지지 않는 원인도 여기에 있으며,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각 언론에서도 강도 높은 비판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으로써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닌, 속칭 아낙네의 말을 듣고 갈대처럼 흔들렸다는 점에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우리나라 서열이 1위는 최순실, 2위는 최순실의 전 남편인 정윤회, 3위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닌 셈이다. 결국 한 명이 대한민국을 쥐고 흔든 모양새다.

최태민 목사 일가의 행적이 이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사교에 놀아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음에도, 한국교회는 박 대통령의 문제를 지적하는기는 커령, 박 대통령 감싸기에 나섰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한국교회는 최태민 목사의 행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국선교단이 창설한 기독십자군(구국십자군)에는 당시 반공주의에 앞장섰던 한국 보수교계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했다. 경향신문 1975년 6월 16일자에 따르면, 목회자들이 2박 3일 동안 사병들과 똑같은 영내 생활을 하면서 총검술과 사격 훈련, 작전술 등도 이수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여기에 이름이 올라온 당시 교회지도자는 예장통합 강신명 목사를 비롯해 예장합동 최훈 목사, 감리교 박장원 목사 등 10개교단 50명의 목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복음 전파와 승공 정신 함양, 사회 정화에 목적을 두었으며, 대한구국선교단은 그동안 2회의 구국 기도 대회를 열었다. 당시 한국교회는 십자군사관학교에 대해서 의아해 하면서도,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한편 많은 지도자들은 이 단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참여를 거부하기도 했다.

기독십자군의 총사령관이나 다름없었던 박장원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으로 인천송월감리교회에 시무하면서, 12년간 수요일마다 구국 기도회를 인도해 왔고 70년부터는 철야 부대까지 조직, 나라와 민족을 위해 철야 기도회를 인도해 왔다. 1975년 18개 교단이 모인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에서 일명 십자군조사위원회(위원장=신신묵 목사)를 구성해 최태민 목사와 대한구국선교단의 이단성 조사에 나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미루어 봐 한국교회는 좋든 싫든 최 목사와 같은 배를 탔던 것에 대해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작금 한국교회는 마치 꼬리 자르기 식으로 한국교회에서는 정통 교단이나 교계에서 인정한 신학 과정이 객관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태민 목사에 대해서 목사로 부르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진보와 보수 언론을 아울러 박 대통령의 ‘비선실세’인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한국교회가 여전히 박 대통령을 호위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인 한기총과 한교연, 한국교회언론회가 이번 사태에 대해 논평이나 성명을 낸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겉으로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대통령의 부재로 인한 국정공백을 걱정하고, 개헌에만 무게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타기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한국교회의 진실된 행동을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또 일부 목사들은 황교안 총리의 책임총리를 거론하고 나섰다. 또한 대부분의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이단연구가들은 문제가 되고 있는 교회와 인사들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면서도, 오늘 국정농단의 중심에 서 있는 최태민 목사와 영세교, 그리고 최태민 목사의 딸들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보이고 있다. 아니 7번에 걸쳐 이름을 개명하며, 권력의 핵심에 들어간 최태민 목사 일가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며, 연일 쓰레기 같은 말을 카카오톡을 통해 쏟아내고 있다.

“종북좌파들이 정권을 잡지 못하도록 국민들이 막아야 합니다. 종북좌파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 대한민국은 끝이 올 것이며, 종북좌파들로 대한민국은 온 나라가 붉은 사상을 가진 종북 좌파들로 가득 찰것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역대 정권 김대중이와 노무현이가 어떤 자였는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이하생략)   

이런 목회자들의 행태가 속속 드러나면서, 양심 있는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신학생, 교인들은 예수님이 벌인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일 수 있겠는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영세교와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 아리송해 하고 있다.

교회, 직간접으로 영세교에 협력

현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총회장인 전기영 목사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언젠가는 최태민 목사에 대해 증언하고 싶었다”고 전제한 뒤, 최태민 목사의 1970년대 최순실은 원래 최필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또한 최순실의 딸 정유라도 정유연이 본명이라고 밝히고, 자신은 종합총회에서 안수를 받으면서, 총회장이었던 최 목사를 알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 뒤 사망 직전인 1993년까지 10년동안 교류해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당시 젊은 내가 종합총회 부총회장을 맡자 목사들이 시기 질투를 많이 했는데, 그때 최 목사가 그들에게 무당이 가진 혼도 못 가진 사람들이 무슨 목사를 하느냐(?) 나(전 목사)를 가리키며 이 분은 나보다 영이 높아 모셔온 분이라고 옹호한 적이 있다"며, "최 목사는 특히 '내 신이 그랬다'는 등의 '자신만의 신' 단어를 참 많이 사용했다. 박 대통령이 쓰는 혼이라는 단어가 최 목사에게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전 목사에 따르면,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뒤 최태민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육 여사를 꿈에서 만났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박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 측에서 최 목사에게 차량을 보내 청와대로 불러들였고, 최 목사에게 육 여사가 빙의해 '최태민 목사를 따라야 한다. 널 도와줄 것이다'라고 말하자 박 대통령이 순간적으로 기절까지 했다는 게 전 목사의 주장이다.

이후 최 목사는 대한구국선교단 등의 직책을 맡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 목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깝다는 점이 알려지자, 그 위세가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또 최 목사는 사망 전 해인 1993년 전 목사에게 거액이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 데 같이 힘쓰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전 목사는 "(최 목사가) 은행에 13억원이 있고, 이자도 9천만원이나 나온다. 근화봉사단을 이끌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드는 데 사용하라고 했다"고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어 "최 목사가 직접 그 돈의 출처를 밝힌 적은 없지만 그 돈이 어디서 났겠느냐, 기업들이 알아서 가져다준 것으로 생각한다. 최 목사는 원래 가난했던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 목사의 얼굴을 보니 귀신에 홀린 것 같아 당장 나가라고 소리치며 교단에서 내쫓았고,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귀신에 들린 것 같은 최 목사 얼굴이 아직도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전 목사는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곁에 머물며 했던 행동이 비슷하다는 개인적인 의견도 내놨다. 그는 또 최 목사에게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고 했다.

대답은 “최 목사가 자신은 박근혜 대통령과 영적인 부부이며, 부적절한 관계라는 등의 소문도 알고 있으나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며 전면 부인했다"며, "박근혜 대통령과 최 목사가 부적절한 관계라는 소문은 수준 낮은 사람이나 하는 얘기이며 사실이 아닐 것이다"이라고 단언했다. 최목사가 생전에 주변인에게 박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많이 안했지만, 이야기할 때마다 '영적으로 높은 분이다'라는 등 존경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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