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 농단의 몸통인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100만명 촛불집회가 지난 주말 서울 한복판을 뒤덮었다. 대통령에 대해 탄핵 내지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서울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또 해외에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집회가 평화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이뤄지면서 종북좌파들의 선동이라는 케케묵은 색깔론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국정 운영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고 거국내각 구성을 비롯한 제반문제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자신도 성역없이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국민의 분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제는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물러나기 전에는 꼼짝도 하지 않겠다는 태세이다.

5년 전 경쟁자를 압도적인 표 차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반드시 만들어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얻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4년여 흐른 지금 국민 누구도 대통령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커녕 있던 믿음마저 헌신짝처럼 내던진 것에 대해 비분강개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선거에서 자신을 믿고 투표한 지지자 뿐 아니라 온 국민을 배신했다. 그의 가장 큰 잘못은 최순실이라는 한 여인의 꼬임에 빠진 게 아니라 그런 불의한 자들을 스스로 가까이 두고 국민들의 한탄과 울부짖음은 외면한 데 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이 아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식의 변명을 늘어놓음으로써 난국을 수습하기는커녕 남에게 책임을 전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이 모든 불법불의의 궁극적인 책임이 대통령 자신에게 있고, 따라서 내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의 신뢰를 배신한 모든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하면 된다. 그런데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자신이 퇴임하면 안보 경제 위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단과 일부 친박 세력의 버티기 작전에 편승해 거취를 미적거리는 것이 평소 원칙과 소신을 중시해 온 박근혜 대통령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퍽이나 낯설게 느껴진다.

비선 실세에 놀아나며 국정이 농단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던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헌법을 명분으로 남은 1년여 임기를 버틴들 누가 대통령의 통치에 순응하겠으며, 무슨 일을 소신있게 추진할 수 있겠는가. 사실상의 식물정부상태로 시간을 끌어봐야 망가지고 피해를 입는 것은 국민이요 더 떨어질 것은 국격일 뿐이다.

혹자는 시시비비는 검찰조사와 앞으로 진행될 사법적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내가 이럴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한 것에서 보듯이 이미 스스로 국민의 대리자로서의 대통령이 아닌 본인이 온갖 정치적 역경을 딛고 각고 끝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무소불이의 통치자로서의 회한과 한탄에서 이미 대통령의 마음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마당에 무엇으로 국민의 신뢰에 싹 틔우고 어떤 말로 돌아서버린 국민의 마음을 돌릴 것인가? 꽃 같은 자식들이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죽음을 맞던 그 순간에 대통령이 7시간동안 무엇을 했는지, 온갖 소문과 괴담이 떠돌아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청와대와 정부에게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이상 맡길 수 없다는 것이 100만 불꽃 뒤에 숨은 국민들의 냉엄한 절규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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