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지 않는 교회, 거리로 나서 촛불 들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대한민국 전체가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적 분노의 목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는 모 정치인의 비상식적인 발언과는 다르게 거센 민심의 불길은 꺼질 줄을 모르고 있다.

주말이면 100만 인파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마라’며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국민들의 절규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광화문에 나선 어린아이부터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 직장인과 대학생, 가정주부,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세대와 연령을 뛰어 넘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도리어 국민통합(?)을 이루어내는 매개체가 됐다는 아이러니한 이야기까지 회자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런대도 대통령은 여전히 불통이다. 그야말로 깊은 한숨만 가슴 가득 답답할 뿐이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탄식이다.

▲촛불의 물결, ‘또 다시’ 거리를 메우다

지난 19일 4차 주말 촛불집회에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절규가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쳤다.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지방 주요 도시는 물론 중소도시 60여 곳에서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촛불 대오에 동참했다.

지난 12일 집회에서 주최 측 추산 100만 명(경찰 추산 26만 명)이 모인 것에 이어 19일에도 주최 측 추산으로 95만 명이 전국의 각 도시에서 촛불을 들고 동시다발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 목소리를 높였다.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 관련 의혹이 하나둘씩 사실로 드러나면서 ‘설마’ 하던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민주노총 등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퇴진 4차 범국민행동’ 행사를 개최했다. 광화문 행사는 청소년, 여성, 법조인, 세월호 유가족, 노동자 등 각계 시민들의 시국발언,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영상 상영, 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특히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직후여서 고3 수험생 참가자가 눈에 띄게 많았다. 정유라씨와 관련한 고등학교 학사 농단과 대학 부정입학 의혹 등에 좌절과 절망을 느낀 수험생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도 1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주최 측 추산 5만 명(경찰 추산 1만 3천명)이 참가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어 “19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쟁취한 민주공화국의 모든 가치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현 시국을 개탄했다.

광화문 본 행사가 끝난 후 참가자들은 종로, 신문로, 새문안로 등을 지나 광화문 앞 율곡로상에있는 내자동로터리, 적선동로터리, 안국역로터리까지 행진했다. 율곡로는 청와대에서 1㎞가량 남쪽으로 떨어진 대로다. 법원은 12일 집회에 이어 주최 측이 경찰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해 율곡로 행진을 허용했다.

▲삼류 정권에 일류 시민이 맞서다

이날 집회에는 100만이 넘는 시민들이 운집했지만 폭력사태 등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밑바탕이 되었다는 평가다. 시민들은 문화공연과 자유발언 등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현 정권을 향해 국민들의 목소리를 쏟아냈지만, 평화 시위에 앞장섰다. SNS 등을 통해 평화적인 시위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일부 시위자들이 과격한 행동을 보일 경우에는 오히려 이들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감당했다. 행사가 마무리된 후에는 도로에 나부끼는 쓰레기들을 스스로 치우고 여기저기 붙은 스티커들을 제거하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일각에서는 더욱 높아진 수준의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을 갖춘 국민들을 정치인들이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말 그대로 정치는 삼류이고 정권은 삼류인데 오히려 시민들의 의식은 일류 수준으로 높아진 것 아니냐는 것이다. 12일과 19일 연이어 100만 명에 가까운 인파가 도심 한복판에서 발 디딜 틈 없이 시위를 벌이면서도 비폭력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된 것은 한결 성숙한 시민의식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이다.

▲교회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

시국이 이처럼 어지러운데 ‘과연 한국교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냐’는 자괴감 섞인 탄식도 나오고 있다. 과거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구국기도회를 개최하고 실제적으로 행동에 나선 교회가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소극적인 대응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은 보수단체가 개최하는 맞불집회에 적극 가담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일 박 대통령 팬클럽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80여개 보수단체는 서울역 광장에서 주최 측 추산 7만 명(경찰 추산 1만 1천명)이 참가한 집회를 열어 박 대통령 하야를 ‘종북좌파들의 국가 전복 기도’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들은 집회 후 ‘강제하야 절대반대’, ‘대통령을 사수하자’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숭례문과 서울역을 오가며 행진했다.

이에 앞서 보수 종교인들과 시민으로 구성된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이 지난 10일 서울역 광장에서 ‘대통령 하야 반대’를 주장하며 집회를 열었다.

상임대표를 맡은 이모 목사는 “대통령이 흔들리는 것은 내용과 영향력에서 일반 사업체 사장이 흔들리는 것과는 급이 다르다. 강한 리더십이 필요할 때인데,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나라를 위해 대통령을 흔들어서는 안 되며 하야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교계 일각에서는 그 동안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려온 한국교회의 행태를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교회가 권력에 기생하며 권력의 비호 안에서 특권을 누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선교 초기 권력을 가진 선교사들에 기대어 이른바 ‘양대인 자세’를 보인 부패한 목사들이 있었는가 하면,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는 일본의 침략전쟁에 협조하고 신사참배까지 하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다.

혹독한 군사 정권 시절에는 독재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빌어 주기도 했고, 모 교회 장로가 대통령이 되자 권력에 기생하려는 목사들이 너도나도 정권에 줄을 대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100만 명의 국민들이 운집하는 촛불의 현장에서 정작 교회는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일부 진보 진영의 목소리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사태를 관망하며 행동을 주저하거나 도리어 부패한 정권의 편에서 생뚱맞은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목사는 100만 명의 시민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던 지난 12일 서울역에서 진행되는 맞불집회에 참여를 독려하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며 ‘종북 좌파들의 국가 전복 사태’로 몰아가기에 바빴다.

▲권력에 기대온 모습 버리고 환골탈태 계기로

아울러 교계 일각에서는 한국교회의 각 교단과 단체 등에서 주최하는 구국기도회가 단순히 대통령을 위한 기도로 드려지는 것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를 들여다보면 ‘대통령 구하기’ 기도회를 드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실제로 모 총회가 주최한 기도회에서는 최순실씨라는 비선 실세에게 국정 농단에 휘말리고 심지어는 검찰이 공범으로까지 지목한 대통령에 대해 일언반구의 비판도 없이 그저 ‘대통령 감싸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여줬다. 우후죽순처럼 드려지고 있는 대다수 구국기도회가 이러한 모습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국민들과 민심의 정서와는 전혀 동떨어진 이런 기도회가 과연 국정 정상화에 무슨 도움이 될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모 연합단체는 박근혜 대통령이 고립무원에 일엽편주와 같은 상황에 내몰리자 슬그머니 그 동안 논평 등을 통해 앵무새처럼 정권에 대한 찬양을 쏟아놓다가 뒤늦게 비판하는 모양새를 취해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이 단체는 ‘좌편향된 교과서로 우리의 자녀들 교육할 수 없다’, ‘한일 외교부 장관들의 위안부 문제 합의 환영’, ‘개헌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용단 지지’ 등 찬양 일색의 성명을 발표하다가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마치 과거에서부터 정권에 대한 견제를 해 온 마냥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약삭빠르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 최태민 목사에 대해 언론지상에 도배되다시피 하는 보도가 나오자 교계는 ‘최태민은 목사가 아니다’ ‘정규 신학교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며 언론사에 ‘목사’로 호칭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발뺌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최태민씨가 과거 예장종합총회에서 안수 받은 것으로 드러나면서 도리어 역풍을 맞는 상황이 초래되기도 했다.

대다수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그 동안 권력에 기대어왔던 한국교회의 모습을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이 교회를 버리신다’는 하비콕스의 경고처럼 이미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등지고 있다. 행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버리시지는 않을지 심히 걱정스럽다.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는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회 지도층과 정부,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그러한 부패의 중심에서 온갖 혜택을 누려온 한국교회가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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