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 수 강 목사

복음이 처음 이 나라에 선교 되었을 때에 서양 선교사들의 헌신은 한국교회의 신자들과 지도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지난 2백여 년간 교회의 초고속 성장은 초기 신앙과 믿음을 전해준 분들의 올바른 신앙정신이 자양분의 효과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월이 부자 되게 하여 준 덕에 교회도 덩달아 부자가 되다보니 생명과 영혼 구원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교회가 부자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사회와 대등하게 교회도 더불어 성장했다. 그러다보니 초기 교회 시대에 교역자하면 청빈 가난, 배고픔, 고난 역경 등등이 대명사처럼 따라 다녔다.

언제부터인가 목회자 하면 가장 성공이 빠른 직업군으로 분류되었다. 여파로 신학교라는 교역자 생산 공장에서 무늬만 교역자인 로버트처럼 과잉생산에 이르기까지 했다. 기계적인 과정 이수로 성경을 계시로 이해하지 못하고 학문으로만 이수한 자들이 경건과 거룩 그리고 영혼의 거듭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학점만 이수하면 그대로 자격을 인정하여 교계에 배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떤 경우는 대학과 대학원 과정도 길다 여겨 반년 또는 일 년 이내에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모두 이수하도록 한 후 목사라는 안수를 붕어빵 찍어내듯 하기도 했다. 지금 교계의 지도자라고 하는 부류는 겉으로 봐서는 누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진짜와 가짜를 구별 하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결국 목사 남발은 기독교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먼저 교계는 자격 미달의 교역자를 속아내어 어지러운 교계를 스스로 정화하도록 해야 한다. 속성 신학교는 스스로 폐쇄하고 거기에 목줄 달고 사는 영혼 없는 교수와 목사들은 유명을 달리하기 전 회개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먹고 살기에 부끄럼 없는 새로운 직업을 찾기 바란다. 교회는 죄인이 예수님을 믿어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제일목표로 삼는다. 목회자는 직업인이 아니라 소명자이다.

다음은 교회 재정으로 과부와 고아,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교회의 헌금은 엉뚱한 곳에 쓰여 진다. 이제는 성경의 계시대로 쓰여 졌으면 하는데 마음 같이 되지 않음이 안타깝다. 순진한 생각과 바보 같은 말이겠지만 초대 교회는 성도들의 자발적으로 바친 헌물과 헌금을 실제 성경의 계시대로 사용한 흔적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었다.

예수님 생존 당시나 초기 교회 설립 당시에는 사회전반이 오늘날 풍요와 비길 수 없는 빈곤과 가난의 극치의 시대였다. 가진 것이 없는 시대에 나보다 더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을 수 있는 신앙심이 오늘 우리들의 영혼 구원의 밑거름이 된 것을 현대 교인들은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들이 가진 것에 비교하면 아주 작은 것이지만 그것을 다 내 놓을 수 있는 믿음이 오늘 우리들에게는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남이 헌물을 하니 신앙과 믿음이 없는 자가 남을 따라 덩달아 하다가 아까워 적당히 남겼다가 목숨을 잃어버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기록은 수천 년 동안 신앙인들의 길라잡이다.

한국교회는 이제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기를 기대한다. 하나님 앞에 드린 헌금과 헌물은 남았다고 해서 비자금으로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심령 골수를 쪼개시기까지 하신다고 하니 교회는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문제는 예산을 사용하고 남는 돈에 대한 관심이 없는 일반 성도들은 으레 잘 사용했겠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범죄를 부추기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교회에서 몇몇 당 회원들 만 알고 있는 교회의 깊숙한 일처리에 일반성도들이 모두 알도록 해야 할 교회운영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교회는 가진 교회는 너무 많이 가졌고 못 가진 교회는 너무 가진 것이 없는 양 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물론 교회의 부는 교역자의 역량과 성도들의 열심을 인정한다. 선진국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땀 흘려 모은 재물을 종교단체나 사회에 기부해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를 평소에 나누어 주는 일을 참고해야 한다. 우리도 사회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도 일억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수는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사회의 양심이 살아 있는 반증이며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에 대한 윤리 책임의식을 반영한 모습이다.
한국교회는 가진 교회는 늘어나고 교회의 부는 계속 축척되는데 비해 못 가진 교회에 대한 윤리 책임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전보다 선교의 열정이 줄어들었고 가난한 서민들과 장애인, 독거노인들, 편부모 가정, 소년소녀 가장 들에게 온정의 손길을 줄이고 있다 교회마다 사정은 다 있겠으나 교회가 세상 존재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 실현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빈부의 개념이 없음을 알자.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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