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하와가 아담도 그것을 먹게 한 이 사건은 온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은 ‘신정농단’의 시작이었다. 금단의 열매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열매”임을 안 하와는 넘지 말아야 할 지엄한 하나님의 명령을 간단하게 넘어서고 말았다. 배후에는 간교한 사단의 유창하고 설득력있는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다. 신정농단을 시작한 하와는 아담을 공범으로 만들었고, 둘은 비로소 선악을 아는 일에 눈이 밝아져 본래의 위치를 떠난 자신들의 실체를 발견하고, 드러난 부끄러움을 나뭇잎으로 가리며, 신정의 주권자인 여호와를 피하여 숨었지만, 결국 그 앞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느냐?”는 하나님의 추달 앞에 기겁한 아담이 “당신이 내게 준 저 여자” 때문이라는 비겁하고 야비한 말로 대답하였다. 질문은 하와에게로 향하였고, 하와는 “뱀이 꾐으로 먹었다”고 대답한다. 하나님은 질문없이 뱀을 바로 응징하셨고, 야비하고 비겁한 아담과 하와를 처벌하셨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그 자리에 엎드려 눈물로 자신들의 허물을 고하고 용서를 구하였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여하간 아담은 비겁했다. 자신의 살중에 살이요 뼈중에 뼈라고 극찬하고 사랑했던 아내 하와를 신정농단의 주범으로 지목한 것이다. 하와라고 다르지 않았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웠다. 그런데 아담의 변명과 하와의 해명은 겉으로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악한 의도를 숨기고, 드러난 허물의 책임은 떠넘기는 비겁하고 야비한, 모르는 이들이 들으면 정말 여자와 뱀이 나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신정농단의 책임을 하나님에게로 돌리고자 한 천박한 처신에 불과했다.

그 상황에서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하나님께 뭐라고 말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행동을 기대하고 계셨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신정농단의 책임을 주변의 환경들과 자신들을 만드신 하나님에게로 몰아가는 몰염치하고 비겁함으로 하나님의 질문에 맞섰다.

박근혜 대통령, 참으로 어리석고 비겁하다. 어찌 국정농단의 책임을 묻는 주권자들 앞에서 감히 ‘아랫사람’을 운운할 수 있는가? 자신은 선한 의도로 시작하고 지금도 깨끗한데 주변 사람들을 관리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비겁한 말을 대답이라고 듣고 있는 주권자들의 가슴이 얼마나 미어질지 생각하지도 못했다는 말인가? 대통령을 관리 못한 주권자를 용서하라!

김기춘, 안병우, 당신들은 정말 사악하고 비겁하다. 당신들이 정말로 ‘충신’이라면, 불문곡직하고 스스로 포박을 청하고, 거짓말로라도 “대통령은 책임이 없으니 우리가 그 주범”이라고 말해야 했고, 그 말에 대한 처분을 주권자들에게 맡겨야 했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어리숙한 대통령을 방패막이로 삼아 퇴로를 찾고, 대통령은 당신들이라도 살려두어야 퇴임 후에라도 대비할 수 있을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서로 의기투합한 것 같으니, 비겁하기가 이를 데 없고, 야비하기가 짝이 없으며, 치졸하기가 끝이 없다.

그러나 뱀같은 최순실과 그 일당들의 모사에 놀아난 대통령과 그 아졸들의 국정농단 사건을 접한 주권자들은 의연했고, 당당했고, 현명했다. 235만이라는 초유의 촛불시위에서 뜨거운 함성을 밤새 토해내고서도 휴지 한 장 남기지 않고 현장을 떠나는 무서운 결기로 심판의 칼을 높이 들었다. 그대들이 신정농단의 귀결이 어떠했는지를 안다면, 국정농단의 주범들을 처벌할 주권자들의 마음도 짐작이 가능하리라. 지금이라도 정직한 고백으로 착한 주권자들의 마음에 호소한다면, 실낱같지만 어쩌면 그대들의 살길이 거기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