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있고, 변해야 산다.

변화와 변질,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거의 같다. 사전적으로 변화(變化)는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이고, 변질(變質)은 성질이 달라지거나 물질의 질이 변함, 또는 그런 성질이나 물질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뜻이 같음에도 두 단어가 사용되는 용례는 전혀 다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개인이든, 조직이든 세월과 함께 변하기 마련인데 적극적으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선하고 바르게 변화를 이끌어 변질이 아닌 변화되어야 한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계속한다면 지금까지 얻었던 것만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세상의 변화를 따라 잡거나 앞서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면 결국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없거나 퇴보되어 탈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 더 높은 삶의 질을 얻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이 변화하거나 변화를 주도해야 해야만 한다. 변화하지 않고, 변화된 삶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변화란 불편한 것이고, 적응이라는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에 변화의 열정과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이 세대에 많지 않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에 따라, 변화에 대처하는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변화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영적인 변화다. 영적변화는 갈망이 있어야 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다.”(고후 5:17)는 말씀에서 새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시간으로서의 새것이 있다. 어제는 낡은 것이고, 오늘은 새것이라는 가장 흔한 시간개념이 있다. 또 신분적 의미에서의 새것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나이 많은 처녀일지라도 결혼을 하면 신부(新婦) 혹은 새색시라고 부른다. 그 신분이 바뀌므로 얻는 새것의 의미다.

그리고 생각과 속성이 과거에 속한 것일 때는 낡은 것이고, 미래 지향적일 때 그것을 우리는 새것이라고 한다. 또 죽음에 속한 것을 낡은 것이고, 생명에 속한 것은 새것이다.

그 무엇이라도 누군가가 가지는 그 순간부터 낡은 것, 이미 옛것이다.

생명에 속한 새것이란 어떤 것인가?

일반적 사고의 가치와 다르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살아있는 것 즉 생명의 것은 언제나 새것이다. 소생하고, 다시 생명을 출산하고, 성장하고, 결실하는 모든 것이 새것이라는 의미다. 생명은 계속적으로 더 새로워지는 역사를 만들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서의 창조적 생명역사는 계속적으로 새로운 것, 즉 새 생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것이고, 그리스도밖에 있는 것은 낡은 것이 된다.

새것이란 삶의 목적이 새로워지고, 삶의 동력이 달라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것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력이 되는 것을 말함이다.

식품을 저장하다 보면 발효와 부패의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다. 같은 음식이라도 발효가 되면 맛과 향이 더 좋아지지만, 부패하면 썩어서 유해물질이 된다. 우유가 치즈가 되고, 배추가 김치가 되는 것은 발효인 반면, 고기나 음식은 오래 두어 썩으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된다. 부패했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품과 행실이 발효하여 원숙해지면 사회발전에도 기여하고, 하나님 나라에도 유익하지만, 부패해지면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어 사회를 어지럽히고, 교회도 어지럽히고, 가정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만다.

새것이 된 사람은 변화된 사람이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이다. 작년과 다른, 어제와 다른, 이전과는 다른 새 사람, 성령으로 변화되어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은 후패함이 없다.

인생의 모습이 변화에 맞추어 변화될 것이기에 변화를 추구하고,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완전함을 향해 가는 변화들을 겪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해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에 그것이 정말 필요하기 전에는 영적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죄를 느껴 자각하고, 용서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전에는 제 발로 그리스도께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과 절망을 느낌으로써 주님을 더 많이 알기를 원하기 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지 못한다. 때로는 환경이 영적 변화를 유발한다.

영적변화를 위한 자기점검과 자신을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 (오노레 드 발자크)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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