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온전한 치유가 이루어지면 어떤 상태가 회복되는가? “깨끗함과 참된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게 작동하는 사람이 된다 (고후 6:6-7). 힐링을 받은 사람이 내놓는 말은 자비와 사랑과 진리의 말씀이 된다. 명철한 지혜자의 말은 상처들을 싸매어주고, 새 살이 돋아나게 한다. 솟구쳐 오른 샘물이 죄와 더러움으로 흉악스럽게 변질된 더러운 옷을 씻어낸다. 충만하게 넘쳐나는 성령의 역사가 지배하게 되면 교만과 죄를 회개하며 토해내게 한다. 더욱 깊이 흐르는 물은 모든 것을 감싸고 채워주며 마음에 평온함을 담아 유지시켜 준다.

예수님께서는 만백성의 치유자로 오셨다. 만나는 사람마다 왜곡된 심령을 사망권세가 지배하는 어두움에서 건져주셨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 탕자의 비유 등으로 하나님의 일을 설명하였다. 이어서 예수님은 그 잃어버린 어린 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표적인 한 사람을 찾아서 여리고 성에 가셨다. 여리고 성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곳이다. 여리고 성은 여호수아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부하다가 인류 최초로 성 전체가 다 무너져서 심판을 받은 곳이다. 엘리야가 기적을 행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 인류의 치료자 예수님이 열두 제자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가셨다. 바디매오가 소리를 지르매 눈을 뜨도록 고쳐주신 곳이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과연 예수님은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계신 분이신가를 드러내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여리고에서 벌어졌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 예수님이 친히 찾아가신 그 사람은 나쁜 행실로 욕을 먹고 있었다. 돈을 벌어들이는 일에만 눈이 팔려서 살았다. 여리고의 “세리장”이요 “부자”라고 알려진 인물이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셔서 살려내셨다. 세간의 낙인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민족을 배반하고 로마의 충견이 되어서 더럽고 치사하게 돈벌이에만 몰두하던 자라는 사람을 예수님은 친히 찾아가셔서 고치시고 살려내셨다. 그는 구경꾼의 한사람으로 나왔으나 여리고 사람들 틈에 섞이지도 못한 채, 저 멀리서 나무 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바라만 보던 경계인이었다. 좋은 일을 하고 있던 주인공이 아니라, 나쁜 행실로 손가락질을 당하던 역사의 죄인이자, 민족 반역자에 불과하던 자였다. 군중들은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리면서 그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며 조롱하고 있었다. 율법을 근간으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은 “죄인”이라고 치부하여 전혀 상종조차 하지 않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은 상한 심령을 치유하시고, 회복케 하시며 구원을 베푸셨다. 치료자 예수님은 친히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서 구원하시러 세상에 오셨다고 선포하였다. 새로운 사람으로 변혁시켜서 선한 동기를 불어넣는 것이 바로 진정한 힐링이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 19:8).

지혜와 능력이 함께 작동하여 지치고 병에 걸려서 상처입은 심령을 고치고 변화시키는 해결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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