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근 열 목사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신 예수는 하나님의 사람의 몸을 입고 임마누엘로 오셨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나심 이라고 말한다. 예수의 나심이 아니고 그리스도라는 말이 덧붙여진다. 우리가 모두 아는바와 같이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는자 라는 뜻이다. 히브리어로는 메시아이고 헬라어로는 그리스도로 표현한다. 모두가 같은 뜻이다. 기름 부음을 받는 자이다. 구약에 예언되었던 메시아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인물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예수는 이름을 말하고 그리스도는 직분을 말한다. 예수가 그리스도의 직분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다. 기름부음을 받는자 라는 명칭은 고대 중동지방에서는 높은 직책을 맡은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케한 의식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제사장, 왕,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지위를 갖는 사람에게 베푼 의식이다. 그 당시 세계적 상황은 로마가 정치적으로 지배하던 시대었다. 로마의 지배아래 유대인들은 인권을 유린당하고 백성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었다. 그때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을 로마로부터 해방시켜 줄 지도자 경제적인 지도자 사회적인 지도자를 즉 다윗의 왕국을 회복할 왕을 크게 바라고 있었다. 그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로마의 식민지 통치를 마감할 메시야로 오신 것이 아니었다. 정치적인 지도자로 오신 분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최순실과 함께 과거 최태민에게 고개 숙이고 달려들었던 정치 목사들은 반성해야 한다. 목사도 잘못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 할 줄 아는 목사는 귀하다.

예수님은 정치나 경제적인 지도자로 오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로 오셨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살리는 길이 정치나 사회적 해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죄악으로부터 이 백성을 해방하는데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하여 백성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십자가의 죽음의 길로 갔다. 이것이 자기 백성을 모든 죄에서 구원하는 길이었다.

2016년 성탄절에 우리 기독인의 신앙을 다시한번 점검해보자. 달러가 부족해서 이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망할 때가 언제였던가? 양심이 사라진다면 희망이 없다. 국회청문회를 보면 도대체 어쩌면 저렇게 미꾸라지처럼 변명을 잘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변명은 잘해서 국회의 청문회는 잘 넘어갈지라도 그들 양심에는 평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의 진정한 평화는 예수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친히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지만 그리스도가 되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죽으셨다. 그래서 예수라는 말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로 인간으로 나신다는 뜻인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그리스도가 되셨다. 십자가에 죽으셨기에 예수가 완성되고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예수는 마리아의 몸에서 탄생하셨지만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탄생되셨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탄생되기를 원하는가? 길은 하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다. 이준열사의 말처럼 국토가 넓어 대국이 아니요 인구가 많아서 대국이 아니라 위대한 국민이 있는 나라가 대국이다. 목사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있어 자기 방법을 교인들에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가르쳐야 한다. 큰집에 산다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위대한 사람이 아니다. 정신이 살아야 위대하다. 임마누엘의 기쁜 성탄절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바로 알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보자!

군남반석교회 담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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