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1938년 4월에 베를린에서 국가교회의 총회장이며 독일 ‘크리천인 베르너’(Werner) 박사가 히틀러의 생일 선물로 목사들이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일을 계획했다. 목사로 안수받기를 원하거나 안수 받은 목사 신분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했다. 나치 정부가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목사들이 맹세를 하든지 하지 않든지 히틀러는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회 내부의 일이라고 ‘히틀러’는 말했다. 그러나 그 일은 독일 크리스천 집단에게는 매우 중요했다. 히틀러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었다. ‘디트리히 본회퍼’와 그의 ‘목사 후보생들’은 충성 맹세를 거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고백교회 목사들이 충성을 맹세하기 시작했다. ‘드트리히 본회퍼’는 자기 자신과 고백교회 사이에 넓은 간격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학생들과 동료 목사들에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희생의 길을 걸으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독일 크리스천 집단은 안정된 사례와 목사관과 은혜로운 회중을 확보해 주겠다고 약속 하면서 ‘불법 목사들’을 설득했다. 그런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아리안 조항에 서명을 해야 했다. 자신이 유대인이거나 유대인 선조를 둔 사람들에게 제한을 가하는 아리안 조항에 서명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차별을 용납할 뿐 아니라, 그 조항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목사들의 충성심을 돈 주고 사려는 독일 크리스천 집단의 시도에 저항하라고 계속해서 ‘핑켄발데’의 학생들과 고백교회의 목사들에게 호소했다. 1938년 11월 9일 밤에 나치는 유대인들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나치 친위대원들은 전국적으로 유대인 소유의 시설물들을 파괴했고 유대인들을 살해했다. - 그날 밤 “수정의 밤” 또는 “깨진 유리의 밤” 이라고 부른다(전국 유대인 상점의 유리창들이 수없이 깨졌고 그 깨진 유리 조각들이 수정처럼 빛났다고 해서 그렇게 부름 - 역자 주). 다음날 나치는 유대인들에게 부서지거나 파손된 부분을 자기 돈으로 수리하고 보험금은 모두 국가에 넘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로스 슐론비츠’의 조용한 숲속에서 목사 후보생들과 함께 지내던 ‘디트리히 본회퍼’는 다음날이 돼서야 그 사건에 대해 들었다.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을 때 그는 크게 분노했다! 그는 “그들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회당을 불살랐나이다.”(시 74:8).는 말씀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여백에 “11월 9일”이라고 적었다.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그는 하나님과 인류에게 자행된 그런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그는 하나님과 인류에게 자행된 그런 폭력은 제 스스로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 유대인 회당이 불타면, 내일 교회당들이 불에 탈 것이다.” 그는 고백교회들도 ‘디트리히 본회퍼’와 동일한 슬픔을 느낀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고백교회는 끝내 침묵하고 말았다.(출처 : 디트리히 본회퍼 : 나를 따르라)

작금의 현실을 두고 개신교회의 최대의 위기라고들 한다. 그러나 기회일 수도 있으며, 더욱 할 일이 많다는 이들도 있다. 생각해 보자! 애국을 이야기하지 않는 권력자가 있는가?. 애족을 말하지 않는 권력자가 있는가? 단 그 진실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인간사에서의 승패를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하면 시간의 간격은 있을 지라도 그 결말은 성경이 증거 하는 공의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최태민’의 망령에 매어있던 성도들은 지금에라도 침묵을 깨고 참회를 함으로, 사람에게 수종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수종하는 자들이 되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18:13)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