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

가난한 아희에게 온
서양 나라에서 온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어린 양(羊)들의 등성이에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

▲ 문 현 미 시인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시작되었다. 구세군의 자선 냄비가 바람에 흔들리며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바삐 무언가를 좇아 걸어가는 발걸음들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애써 외면하며 스쳐 지나가는 눈길과 주머니에서 온기 묻은 지폐를 끄집어 내는 손길...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비치는 거리에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 조명이 눈이 부시도록 화려하다. 하지만 도심의 한 구석에서 누군가는 몸을 웅크린 채 긴 겨울을 견뎌야 한다. 따뜻한 배려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계절이다.

「북치는 소년」이란 시의 제목은 성탄의 기쁨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송 제목이기도 하다. 가사를 보면 ‘기쁜 구주, 성탄, 만왕의 왕, 긴 밤을 지키는 염소와 양떼, 헐벗은 내가 등장한다. 시어들을 살펴보면 캐롤송 가사들과 조금 비슷하다. 이 시는 외롭고 가난한 아이에게 보내온 서양의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에서 시상이 전개된다. 각 연의 끝에 ‘–처럼’이 반복되면서 시 한 편이 완성되지만 여전히 미완의 여운을 남긴다.

카드에 그려져 있는 ‘북치는 소년, 양떼, 진눈깨비’ 등 이국적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것은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다. 시인은 감정을 절제하고 시 속에 여백을 둔다. 비유의 대상이 드러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을 하게 하는 데에 시의 묘미가 있다. 특히 의미 단절과 비약을 통하여 시적 긴장을 조성하고 기쁜 성탄과 소외된 이웃의 대비를 은근히 부각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의미를 찾기보다는 시어들의 배열을 통하여 배어나는 리듬과 아름다움을 느끼면 된다.

‘가난한 아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아름다운 카드보다는 포근한 말과 따뜻한 포옹, 아니 차라리 정성이 가득 담긴 밥과 국이 아닐까.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맨 먼저 들은 사람은 권세가나 재력가가 아니라 양떼를 지키던 목자였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홀로 높으신 그분은 어둠이 있는 곳에 생명의 빛을 비추시고 모두에게 사랑을 주시러 오신 평화의 왕이시다. 사랑은 소리 나는 구리나 울리는 꽹과리가 아니라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히 해야 한다는 걸 깊이 되새겨본다. 좋은 시는 의미 있는 생각을 하게도 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쳐 아름다운 실천을 하게도 한다.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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