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재형 목사

예수님께서는 자신 앞에 다가오는 십자가의 고난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의 목적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시겠다는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 즉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경고하는 것 복음을 전파하는 것 각종 고통에 메인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병을 고치는 것 십자가의 대속 사역 등을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법은 바로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영광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계셨기에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를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축복된 일이고 좋은 일이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을 생각해볼 때에는 고통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과 다른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에서는 세상과 다른 삶을 삶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받는 고난은 믿음의 선진들이 받았던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입니다.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 가운데 특별히 살펴보길 원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난입니다. 악한 사람들 가운데서 선하게 산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가장 좋은 본이 되시며 또한 좋은 예가 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주님께서 많은 어려움을 당한 이유에 대해 주님께서 세상을 악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며 또한 세상에 속하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전함으로 많은 고난을 받으셨는데, 그것은 세상의 악한 것을 악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듣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악하다고 말할 때 그들은 우리를 배척하고 싫어합니다. 또한 선한 삶으로 악한 행위에 함께 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 삶으로 세상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정죄합니다. 악인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선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악행을 함께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좋아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 때 이처럼 많은 고난이 따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였은즉, 너희도 미워하리라.” 우리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는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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