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 문 현 미 시인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고 싶거나 무엇으로 남고 싶어한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그동안 어디를 향해 그리도 애쓰며 달려 왔는가. 누구를 위하여 그토록 몸부림치며 오갔는가. 지금 생의 여정에서 어디쯤 머물고 있는 것일까. 인생의 시계는 몇 시를 가리키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뇌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시인도 겨울 이맘때 시를 쓴 게 아닌가 싶다. 시인은 스스로 눈발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전제 조건이 있다.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고 한다. 진눈깨비는 눈이 녹아 비와 섞여 내리거나 비와 눈이 함께 내리는 현상을 뜻한다. 시의 전반부에서 시인은 다소 단호한 어조로 ∼되지 말자는 청유형을 사용한다. 그러니까 무언가 섞인 상태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순수한 흰 눈을 원한다는 걸 시를 계속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비록 춥고 바람 부는 어두운 세상일지라도 ’함박눈‘이 되고 싶어한다. 그것도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사람 사는 마을로 다가가고 싶어한다. 이 시는 함박눈이 함유한 긍정적 이미지가 중심축을 이룬다. 그래서 시인은 함박 눈발이 되어 불안한 사람을 다독이는 편지도 되고 상처를 어루만져 마침내 새살이 되는 능력의 아이콘이 되고 싶어한다.

긴장과 절제의 수사는 보이지 않더라도 시적 화자의 따뜻한 시선이 위로를 주고 평안의 길로 이끈다. 아름다운 정신을 지닌 시인이 쓴 시 한 편의 힘은 참 크다. 명화 ‘뷰티플 마인드’에서 주인공이 노벨경제학상 시상식에서 한 말이 떠 오른다.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다는 것은 멋지지요. 하지만 창조주가 우리에게 준 더 좋은 선물은 아름다운 마음을 발견하는 재능입니다.” 혹한의 겨울이 우리 곁에 와 있다. 이 겨울이 지나면 곧 눈녹이물 흐르리라. 다가오는 새해에는 매화 향기 아득한 아름다운 봄이 좀더 빨리 오기를...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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