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했다. 천국이 이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어린 아이는 가장 약자이며, 누구인가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 할 권리가 있다. 이런 아이들이 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기아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또 부모의 폭력에 의해 많은 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오늘 아침 카카오톡을 통해 해외 필리핀에서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달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 왔다. 내용은 가난과 질병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어린 아이들에게 희망을 달라는 내용이었다. 땅 끝 마을의 이야기를 보내 온 것이다. 어린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은 “이 어린이가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자진해서 부인과 함께 필리핀으로 떠난 김상호 목사가 땅끝 마을의 이야기를 보내 왔다.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라 혼자 보고 넘기에는 너무 아쉬워 신년 새해를 맞아 칼럼의 소재로 삼았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기아, 그리고 테러로 인해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의 피맺힌 한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2017년 1월1일 주일아침 책상에 앉아 기도 했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살아 갈 것을 간절히 소원했다. 이 때 카카오톡에 김상호 목사의 글이 올라온 것이다.

필리핀의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은 가난과 무지, 쓰레기더미이지만, 필리핀 선교지의 아이들은 순진하고 꾸밈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사랑스럽기만 해 안아주고, 또 안아주며, 필리핀과 인류사회의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물음에 ‘행동하라’고 대답했다. 율법교사는 율법과 하나님 사랑에 대한 지식은 많았지만, 자신의 이러한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서 예수님과 토론을 벌이려고 했다. 겉으로 보이는 신앙은 좋았지만, 거짓 신앙이었다. 오늘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지식과 신앙심은 높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서만큼은 문제 삼을 것이 없다. 그런데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며, 이웃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 시대부터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러면서 사마리아인을 내세워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내세워 천국이 이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힘없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낳은 부모가 도저히 능력이 안 되면, 이 아이들의 이웃인 그리스도인들이 돕고,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생명이며, 생명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어느 부모가 죽음 직전에 있는 어린 자식을 죽게 내 버려두겠는가(?) 내버려 둔다면, 그 부모는 사람이 아니다. 생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다.

분명한 것은 천국의 주인인 아이들이 파멸과 수렁이에 빠지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잘 키워야 한다. 그런데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 몬다는 것이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신학대학교수가 딸을 죽이고, 주검을 집안에 11개월동안 방치했는가 하면, 원형이는 계모와 친부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 조금만 이웃들이 관심만 가졌더라면, ‘죽임’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움을 요청하는 선생님도, 가족도, 이웃도 모두 ‘살려달라’는 애원하는 아이들의 절규를 외면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대로 아이들을 만드셨다. 때문에 이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도록 날개를 달아 주어야 한다. 더 이상 이 땅의 아이들이 전쟁과 폭력, 기아, 분쟁, 부모에게 이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예수님이 가장 많이 사랑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약자인 아이들은 자신을 도와 줄 이웃을 기다리고 있다.

굿-패밀리 대표 /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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