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온 나라가 강남 이상한 아줌마 한사람 때문에 온통 난리가 난 정초에 날아든 평양 김정은의 신년사가 우리의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원래 버릇없는 줄은 알지만 정초부터 원색적으로 퍼붓는 대남 도발을 보면서 어떻게 손을 봐줘야 할지 고민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즈음 먼저 발끈한 것이 워싱턴의 트럼프였다. 대륙간 탄도탄의 개발 성공이 임박하였으니 트럼프는 알아서 대화의 창구로 나오라는 반 협박성 프러포즈를 트럼프가 한마디로 "턱도 없는 소리“라고 걷어차 버린 것이다.

지금 외교가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강대강의 불꽃을 튀기고 있다. 오바마가 러시아 외교관을 대규모로 추방했는데도 푸틴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똑 같은 규모로 미국 외교관을 추방하자는 참모들의 건의를 묵살하고 알았으니 그냥있으라고 대범하게 넘겼다. 이를 본 트럼프가 잘 했다고 칭찬을 했다. 미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여기에 대만까지 가세하여 중국을 에워싸니 북경이 애꿎은 여행 전세기를 불허하고, 요리조리 한한령의 기세를 키워가니 우리가 죽을 맛이다. 사드로 인한 중국의 반발이 맞지만 한국의 혼란기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고 우리를 길들이려고 하는 중국의 외교적 계략이 엿보인다. 하여간 세계는 지금 최상급의 터프가이 지도자들에 의해 그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여기에 김정은이 치기어리고 어설픈 터프가이 흉내를 내고 있다. 이런 평양의 시그널에 대해 워싱턴의 차기 정권은 지금까지 평양을 상대해 왔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방법으로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앞으로도 평양의 헛발질이 지금처럼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북한에서 핵을 제거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런 워싱턴과 평양의 핑퐁게임에서 소외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우리의 가능성 혹은 돌파구는 어디인가? 그곳은 베이징이다.

사드로 한반도의 핵 위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최선의 답이 아닌 것 같다. 이글 이전에 필자도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사드 배치는 어떨 수 없다고 여겼지만 살펴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한반도 핵위협 제거가 궁극적 목표라면 그 방법은 사드가 아니 외교이다. 외교에서 가장 위험한 방법은 무력으로 상대방을 위협하는 것은 최악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아니라고 우리가 강변해도 한국의 사드 배치는 중국에 있어서 위협적이고 모욕적인 것은 사실이다. 무 시위로 외교에 성공하면 큰 소득을 얻지만 만일 실패할 경우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 근세사에서 본 외교의 경험칙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중국을 상대로 그런 외교를 하고 있다. 바로 코앞에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발가벗을 모습을 볼 수 있는 기기를 설치하겠다는데 이에 대해 보복하지 않을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그 위험의 보상을 미국이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자국군을 인계철선밖으로 이동 배치하고, 일단 유사실 자국민의 철수부터 고려하는 그들의 생각을 읽으면 우리의 심사가 복잡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 있어서 중국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연결고리가 있고 그것은 앞으로의 우리 운명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을 우리가 버릴 수 있는 처지는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하다면 우리가 평양의 김정은을 안고 갈 수 있는 길은 미 중의 샛길이며, 미일중러의 점접을 통과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것이 외교적으로 얼마나 치밀해야 하는 것이며 복잡하고 미묘한 경우의 수들을 계산해야 하는 지는 전문가가 아니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형편이 웃기지도 않는 현실에 직면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평양의 갈 길은 누가 보아도 정해져 있고, 그들을 그길로 갈 수 밖에 없으니, 그들의 미국을 어떻게 상대할지는 명약관화한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쓸 수 있는 외교 카드가 아직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외통수를 뽑아 든다고 하는 것은 더 많이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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