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아침 일찍 충청남도 당진시 시골교회를 섬기는 한 권사님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새벽기도회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갔는데, “담임목사님께서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 모두가 빨갱이며, 오는 7일 열리는 애국집회에 성직자 1000명이 성직자가운과 후드를 착용하고 애국집회의 선두에 서기로 했다”며,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물었다.

그는 또 <기독교한국신문>의 그간의 기사를 보고 최태민의 악령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나라의 최고지도자와 최태민의 발아래 굴복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형태를 고발하는 등의 내용이 감동을 주어 격려차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울부짖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소리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하소연 했다.

현재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끝없는 촛불을 든 시민들을 향한 종북몰이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예측하기 힘들다. 오는 7일 오후 2시 1천명의 성직자들은 성직자가운과 후드를 착용하고 ‘탄핵 기각 및 계엄령선포 촉구 범국민대회’ 전면에 서서 애국집회를 갖고 기도하자는 내용의 광고문은, 생명의 존엄성을 상실하고,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내용을 설교 때마다 토해내는 오늘 일부 보수적인 목회자들의 극단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특히 광고문은 “‘계엄령 선포’만이 12만 종북 간첩을 대청소 할 수 있다”는 것과 “박근혜 대통령님 탄핵은 반드시 기각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에 1천명의 목회자가 성직자 가운과 후드를 착용하고, 행진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눈살을 찌푸릴 모습이다. “성직자 가운과 후드 착용은 이런 때 하는 것인지”를 이 행사를 준비한 기독교계 인사들에게 교인들은 묻고 있다.

계엄령 선포를 앞장서서 촉구하는 한국교회 일부목회자.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라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교훈에서 크게 벗어난 행동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생명’에 방점을 두고 있다. 계엄령을 선포해 또 얼마만큼의 국민을 희생시키려고 하느냐(?)고 국민들은 묻는다. 이 물음에 대해 일부목회자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애국하는 길”이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이 광고문은 또 “현재 진행 중인 일련의 ‘대통령탄핵 촛불집회’는 북한지령에 따라 3야당, 50대 언론사, 전교조 등 남한 내 12만 종북세력들이 주축이 되어 벌이고 있는 ’일종의 국가전복반란행위이다”며 “나아가서는 야당지도자 문제인은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하겠다’고 공헌했다”고 밝히고, 대통령(직무대행)은 헌법 제77조에 의거 현 사태를 ‘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하고, 지체없이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생명의 존엄성을 그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민족의 화해와 연합을 강조해야 할 목회자들이 여기에 춤을 추며, 맞불집회의 중심에 서 있는지에 대해 교인들은 의아해 하고 있다. 그리고 성직자의 가운과 후드는 이런 때 사용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교회 일부 목회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선교 130년 동안 권력과 결탁해서 교회를 성장시켜온 잘못이 몸에 그대로 배어 하루아침에 그것을 바꿀 수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교인들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농촌교회의 교인과 도시의 작은 교회 교인들은 새벽기도회에서, 탄핵정국에서 천박한 목소리를 토해내는 목회자들의 말에 헷갈려 하면서, 하나님께 “어떤 것이 옳은 것이냐”며,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목회자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교인들의 이러한 기도는 어찌 보면, 천박한 목소리를 설교 때마다 토해내는 목회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민심을 저버린 한국교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가진 것이 너무 많은 한국교회는, 이제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해산하는 고통으로 내려놓아야한다. 더 이상 한국교회는 공평하신 하나님의 눈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대통령의 탄핵은 ‘헌재’에 맡기고,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예수님께서 역사의 현장에서 벌인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것만이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잃어버린 보수의 가치와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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