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기적

반칠환(1964~)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문 현 미 교수
새해 새날 어둠의 장막이 걷힌다. 꿈도, 희망도 함께 솟아 오른다. 어김없이 태양은 떠 오르고 사람들의 가슴에 설렘과 기대가 피어오른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혹은 나아지리라 믿거나 믿고 싶다. 팍팍하고 힘든 삶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삶이 짓누를지라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간다.

참 견디기 쉽지 않았던 지난 해였다. 크고 작은 숱한 사건들로 충격에 빠지기도 했고, 기쁨의 환호로 들뜨기도 했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뿐 숨을 몰아쉬는 것이다. 다만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디지털 세상에 서는 속도가 미덕이다. 빨리 달려야 정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일종의 강박감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런 때 시인이 선택한 시의 제목이 심상치 않다. ‘기적’이라는 시어는 일상에서 범상하지 않은 단어로서 아주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때 사용한다. 기적이란 무엇인가. 사람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거나 믿을 수 없는 현상이 눈앞에 펼쳐질 때 기적이라고 한다. 시인은 황새든 말이든 거북이든 심지어 무생물인 바위조차도 모두 동일한 시각에 새해를 맞는다고 표현한다. 빠른 속도로 날아서 가든지 느릿느릿 기어서 가든지 도착하기는 마찬가지다.

시에서 상징은 무척 어려운 수사기법이다. 본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 시에 등장하는 황새, 말, 거북, 달팽이 등 동물 상징은 다양한 삶의 양식을 함유하고 있다. 여기서 황새가 어떤 유형의 삶인지, 어떤 부류를 지칭하는지 굳이 살피지 않아도 시의 전언이 독자에게 전해진다.

누군가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가파른 속도전에서 끊임없이 움직여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는 오히려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일깨워 준다. 모두 초적극 행동주의로 나아가다 보면 결국 자기를 상실하고 만다는 것이다. 느림이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잊지 않을 능력, 세상을 받아들이는 긍정 에너지를 키우겠다는 의지라고 한다.

속도로 치닫는 사회 풍조를 넌지시 비판하는 시인의 시적 사유와 감각이 돋보인다. 삶의 본질을 천착하는 통찰력과 상상의 진폭이 넓은 작품이다. 따라서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서정의 파동이 밀려드는 수작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떠 오른다. 바위처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산수유 노란 향기 자욱하고 여름의 푸른 이마와 마주하게 된다.

백석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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