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정 봉 목사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만날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다”(마 7:7-8)

예수는 제자들에게 여러 번에 걸쳐 ‘기도하라’고 직접 명령 하셨다. 이 명령은 기도의 위력을 설명하고 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있다.
1982년 마이클 패이건이라는 사나이는 버킹검 궁전 엘리자베스 침실을 침입했다. 사나이는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 사나이는 떨리는 음성으로 “여왕 폐하! 놀라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탄원을 들어주십시오” 하며 말을 이었다.

여왕은 침착하게 일어나 가운을 걸치고 침대에 앉았다. 호위병을 부르지 않고 침실로 침입한 무법자의 탄원을 듣겠다는 자세였다.

“폐하! 전에게는 어린 4남매의 자녀가 있습니다. 회사의 감원정책으로 인해 명예퇴직을 당했습니다. 부인은 제가 무능하다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사회복지 기관에 아이들의 양육을 부탁했습니다. 그것마저도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변사람들은 저를 정신병자 취급을 합니다. 폐하! 저도 자랑스러운 영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게끔 도와주십시오. 정말 엎드려 부탁을 드립니다”

이 사나이의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여왕은 호위병을 불렀다.

“이 사내에게 직업을 구해 주어라. 절대로 벌하지는 말아라”

마이클 패이건은 여왕에게 엄청난 무례를 범했다. 발각되면 중벌을 받는 것을 알면서도 모험을 감행했다. 간절하게 탄원을 한 것이다. 여기에 여왕도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간절한 청원을 들어준 것이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침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위해서 ‘효’를 다해 어머니를 살린 이야기, 물에 떠내려가는 노부를 살리고 자신도 생명을 건진 이야기, 자식을 사랑하는 이야기, 세월호 참사로 죽어간 자식의 한을 풀겠다며 광화문 네거리에 호소하는 유가족 등등은 여기에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힘없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에 귀를 기울이신다. 그리고 이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신다. 이 기도는 분명히 주님의 이름으로 드려야 한다. 위 성경구절은 구하는 자의 기도를 이루어주신다고 주님의 약속이다.

“지금끼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요 16:24)

외국에서 활동하는 선교사의 집에 강도가 들었다. 강도는 선교사가 본국에서 온 선교비를 은행에서 찾는 것을 보고, 뒤를 밟았다. 그런데 군인 17명이 선교사를 호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질 겁을 한 강도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선교사의 집을 샅샅이 수색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선교사는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보내 자신을 지켜주신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얼마 후 본국에 돌아와 선교보고를 했다. 그때 그 일을 이야기하는 중에 앞에 앉아 있던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아멘! 아멘! 하는 것이었다. 선교사는 자신의 이야기에 감명을 받아 계속해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줄 알았다. 보고가 끝난 다음 그 자매가 다가와 그때가 몇월 몇일이라며, 17명의 후원회원들이 모여서, 선교사님을 위해서 기도했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17명의 후원회원이 선교사를 강도로부터 보호한 것이다. 기도의 힘은 이렇게 크다. 기도는 깨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예장 개혁총연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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