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성 목사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여기저기서 교회를 새롭게 하자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이래서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의미가 퇴색하기 마련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 상태의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 어떤 병에 걸렸는지 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야 해답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원인을 파악했다면 즉시 이를 바꾸기 위해 행동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개혁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대두되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부패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의 상황을 냉철하게 되짚어 보자. 우선 과연 한국교회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혹자는 오늘날 한국교회가 예수님이 없는 친목모임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말로는 예수님을 찾지만 실제 교회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예수님 중심,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 자신을 중심에 놓은 자신이 주인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신앙이 삶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할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믿음만으로’라는 말이 행함이 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왜곡되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루터의 말은 믿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 결코 행함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대도 우리는 믿음만을 강조한 구원에 매달리는 것은 아닌가. 신앙은 결코 삶과는 분리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 모두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우리의 신앙이 행동으로 실천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육신의 욕심을 구하는 기복신앙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기복신앙에 매달리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이뤄 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세속화되어 돈과 물질을 우선시하고 윤리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음을 회개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성추행과 성폭력 등 각종 성추문에 연루되고, 교회가 돈 문제로 갈등에 휩싸이고, 대형교회에서는 세습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래서는 결코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없다. 도리어 손가락질을 받고 비웃음을 사기 십상이다. 사회적인 시선이 이러한데 어찌 복음전파가 쉽겠는가. 무릇 기독교인이라면 사회적인 통념상의 윤리와 도덕보다 더욱 높은 수준의 윤리와 도덕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인을 자처한다면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외면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역하시는 동안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병든 자 등 사회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셨다. 이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이들을 치유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인 것이다. 그런데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한국교회가 구제와 나눔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재정을 사용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도리어 이웃을 고통을 외면하고 그들을 차별하거나 심지어는 조롱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 많은 목회자들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것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교회는 우리가 어떻게 썩었는지 얼마나 부패했는지 냉철히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부패를 개혁하고 갱신하기 위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샬롬교회 담임,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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