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종 목사
한 아이가 웅크리고 주저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이들에게 인기인 로봇 장난감이다. 주변의 어느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중하는 모양새가 기특하다. 그런데 이내 아이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살펴보니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로봇인데, 부품 한 개가 모자란 모양이다. 아이는 자신이 공들여 만든 것을 다시 부셔 재차 만들어 보지만, 역시 작은 부품 하나가 없어 온전한 로봇이 될 수 없다.

이처럼 세상을 살다보면 작은 부품 하나가 없어서 곤욕스러운 상황에 처한 경우가 종종 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처럼, 평소에는 별 것도 아닌 것처럼 여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쓰려고 보니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경우다. 모든 것은 저마다 역할이 있고, 또 쓰이는 곳이 있다. 작다고 무시하거나, 등한시 했다가는 도리어 자신이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간혹 ‘갑’질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재물을 무기로,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핍박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윤리적인 잣대나, 도의적인 문제 등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오직 자신들의 이익과 체면을 위해서만 행동한다. 정작 자신들이 그 위치에서 편안하게 잘 먹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음을 망각한 것이다.

들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인데, 하물며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이러한 일들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각종 사회면을 보면 이런 파렴치한 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다. 누구도 불평등을 당할 이유가 없고, 누구도 무시를 받아야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평등하며, 사랑을 받아야할 존재다. 그 가치는 실로 존귀해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이 작든, 영향력이 없든, 병들었든, 경제력이 없든,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어야 한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에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금 한국교회가 분열의 소용돌이에 휩싸일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교회를 하나로 연합시키겠다는 대명제로 나선 한국교회총연합회 출범과 관련해 교계가 찬반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명분에는 모두가 동참하지만, 방법에 서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간극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통합의 당사자격인 한기총과 한교연마저 서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으며, 각 교단 안에서의 불협화음도 불거지고 있다. 온통 한교총 출범의 정당성과 폐해를 두고서 논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2017년 희망찬 새해를 향해 첫발을 내딛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임에도 여전히 갈등이 반목되는 것에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바로 한국교회 부흥과 성장을 위해 묵묵히 사명을 감당해 온 군소교단들이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몇몇 대형교단 중심으로 헤쳐 모이는 형식은 작은 교단들을 위화감 들게 만들었다. 소위 몇몇 대형교단만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처럼 포장되어, 나머지 교단들은 정통성마저 없이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손을 잡고 전진할 때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음에도, 현재로서는 앞에서 먼저 갈 테니 알아서들 따라오라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됨’이라고 볼 수 없다.

아이들의 장난감도 작은 부품 하나하나가 모여서 하나의 로봇으로 탄생한다. 하물며 주의 종들이 모인 한국교회 연합단체에서 작은 교단들을 뒷전에 두고 ‘하나됨’을 논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 부디 진정한 하나됨을 위해 크고 작음을 떠나 서로 포옹하는 것부터 하길 기대해 본다.

예장 호헌총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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