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찬 목사

최원호 교수가 <예수님 제자들의 열등감>이란 제목의 책을 출판한다고 한다. 이 제목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것은 열등감과 패배주의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교육과정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해방된 히브리인들은 곧장 약속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40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40년이란 세월 허비해야 했다. 꿈에 그리던 땅, 조상 대대로 갈구하던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40년이란 긴 세월을 빈들에서 헤매야 했다. 그것은 억눌려 살았던 사람들의 훈련과 교육이란 측면에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눌려 지낸 사람들은 지배자들에게 억눌려서 주체성과 연대성을 상실하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집트 땅을 벗어났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주체성과 연대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약속된 땅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눌린 사람,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주체성과 연대성이다.

이것이 새 나라를 세우고, 지킬 수 있는 이들의 힘이다. 가나안 땅에는 싸워야 할 적들이 많았다. 극복해야 할 시련도 많았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적들이 너무 강하고 우리는 메뚜기처럼 무력한 존재다”고 절망적인 보고를 했다. 이스라엘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종살이 하던 이집트 땅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야웨는 어쩌자고 우리를 이리로 데려다가 칼에 맞아 죽게 하는가? 아내와 어린 것들이 적에게 붙잡혀 가게 하는가? 이집트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겠다.”

얼마나 절망적인 한탄인가. 강한 적들과 싸워 보려는 주체성을 상실한 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산이 가로막히면, 산을 무너뜨리고서라도 갈 길을 가는 기백이 없었던 것이다. 적들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자신들의 힘을 과소평가했다. 노예근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서로 단결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공동의 목표, 자유롭고 평등한 새 나라를 이루자는 생각보다 제 한목숨, 제 아내와 제 새끼를 아끼는 마음이 앞섰다. 연대의식보다 개인의 생존에 집착했다. 이것 역시 노예근성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노예근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하나님은 준엄한 심판을 내리셨다.

“너희들은 죽어 시체가 되어 이 광야에 쓰러지고 말리라. 그리고 너희와 자식들은 너희의 배신 죄를 짊어지고 너희의 시체가 썩어 없어질 때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야 한다.”

노예근성은 좌절의식과 패배의식을 뜻한다. 이런 노예의식을 가지고 약속한 가나안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 할 수 없다는 생각,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체념의식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이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체념이나, 포기는 없다. 하나님은 무기력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40년 동안 광야에서 편력생활을 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편력생활은 다툼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와 하나님 사이에서 끊임없는 불평과 책망과 분노가 교차됐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집트로 돌아가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들의 아우성을 들어주다가도, 분노를 터뜨리며, 그들을 버리겠다고, 몰살시켜 버리겠다고 단언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했다.

모세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이집트 노예생활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소란을 피우는 백성을 향해 꾸짖기도 하고, 얼르기도 하면서 다독거렸다. 또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다가 지친 하나님은 그들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겠다고 토라지면, 모세는 목숨을 걸고 애걸복걸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하나님은 왜 변덕스러운 모습을 성서에서 보이고 있을까?

그것은 히브리인들이 변덕스럽기 때문에 그들의 하나님도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다. 먹을 음식도 없고, 잘 자리도 편치 않은데, 어떻게 히브리인들이 고상하고 점잖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이들의 하나님이라면, 그들의 삶속에 들어가 그들과 씨름하는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예장 한영측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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