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우리가 반드시 닮아야 할 분이 있다면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모습도 닮아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사람이 교만할수록 마귀를 닮고 겸손할수록 예수님을 닮습니다. 우리는 스승을 닮고 위인을 닮고 성공한 사람을 닮으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닮으려면 예수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겸손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 오신 그 자체가 겸손의 극치이지만 삶 속에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겸손을 보이셨습니다.(요13:4-5)그리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20:28)고 하셨습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해 유럽으로 기차를 타고 갑니다. 수많은 기자들이 이를 취재하기 위해 그 기차에 올라 슈바이처 박사를 찾았습니다. 그는 20세기의 성자라고 불리어졌고 박사학위만 20개가 넘으며 영국 황실로부터 작위를 받은 귀족입니다. 기자들은 당연히 특등실으로 갔으나 슈바이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1등과 2등칸에도 가보았으나 허탕을 쳤습니다. 아마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해서 다른 기차를 탔으려니 하고 마지막으로 냄새나는 3등칸으로 갔습니다. 가난한 시골사람들이 가득 찼고 저쪽 구석에서 슈바이처가 그들과 함께 앉아 그들의 진맥을 짚어주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남루한 3등칸을 타고 먼 길에 고생하십니까?" 그러자 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즐길 곳을 찾아서 살아 온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사는 것뿐입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섬김의 삶이며 겸손의 삶이고 바로 예수님을 닮는 삶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며 겸손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우리들이 겸손의 믿음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보다 더 큰 은혜를 베푸시겠다(약4:6)고 약속했습니다. 겸손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보상 받는다(잠22:4)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궁극적인 모델로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통한 진정한 겸손을 보여주셨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너희는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의 길을 향하여 가시면서 십자가의 고난이 아닌 십자가 너머의 영광을 바라보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 받으심은 이제 곧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또 곧 다시금 누리게 될 그 영광과 조금 후면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얻게 될 영혼들을 생각함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십자가의 고난은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받게 되는 그 수치와 고난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의 그 고통은 주님께도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늘 그에게 닥치는 고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에게도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합니다. 하늘나라에 올라가게 되면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서의 영광은 현재의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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